구조조정과 관련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접점을 찾아가는 양상이다. 어제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집행간부회의를 통해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해 관계기관과 충분히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수출입은행 출자와 산업은행의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 발행 시 매입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정부가 한은 역할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물론 말 못 할 고충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언론사 경제·금융부장단 회의에서 구조조정이 더디다는 외부의 비판에 대해 “정부는 기업을 잘 모른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구조조정을 망칠 수 있다” “통상마찰 우려가 있다” “대우조선 빅딜, 해운사 구조조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임 위원장의 발언이 고민이 아니라 핑계로 들린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나서기 어렵다고 하면서 한은에 대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에 나서라”고 주문한 대목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부는 스스로는 하는 일 없이 한은에 짐을 떠맡으라는 요구가 아닌가 말이다.

정부가 국채 발행이든 추경이든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고 이런다면 또 모르겠다. 정부가 필요하다면 국회를 백방으로 설득해서라도 문제를 직접 풀 생각을 해야지, 처음부터 여론몰이하듯 한은 역할론을 들고나오는 건 국회를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꼼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앞으로 산업마다 구조조정 문제가 줄줄이 이어질 텐데 그때마다 한은에 다 해결하라고 하면 되겠는가.

한은의 자세 또한 문제가 있다. 부총재보라는 주요 인사가 “한은의 발권력 동원은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의 절차를 거친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렇다. 어디까지나 한은법과 중앙은행 본연의 준칙을 따른다고 말하면 될 일이지, 무슨 정치투쟁하듯 ‘국민적 합의’ ‘사회적 공감대’ 등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 자체가 황당하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 등 정치권이 구조조정 문제를 놓고 온갖 훈수를 두며 정치적 계산이 한창이다. 정치권의 개입을 부르기 딱 좋다. 구조조정이 발등의 불이다. 정부는 정공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책임있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