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돈 안도는 한국 경제, 구조조정 위한 직접 수혈 필요
‘한국판 양적 완화’ 통화정책 논쟁이 뜨겁다. 4·13 총선을 앞두고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제기한 양적 완화 방식에 대해 대통령까지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다시 가열되는 양상이다. 구조조정이 초미의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소극적인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다. 당시 강 위원장이 제기한 한국판 양적 완화 통화정책의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산업은행이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자금 공급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이 산은채권을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도 직접 인수해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을 20년 장기분할상환제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에만 조선 3사에서 8조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산은도 1조9000억원의 영업적자가 나는 등 기업부실과 그에 따른 금융부실 파장을 고려할 때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의 현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어려운 재정여건을 고려할 때 한은이 적절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한은이 산은채권을 인수해 산은에 자금을 공급해주면 산은이 기업구조조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산은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기업부실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면서도 고위직 낙하산 인사 등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적지 않았다. 잘못하면 한은의 산은채권 인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돼 내년 대선에서 후유증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뉴스의 맥] 돈 안도는 한국 경제, 구조조정 위한 직접 수혈 필요
1997년 외환위기 때 부실기업정리는 부실채권정리기금, 자본잠식 은행의 자본 확충은 예금보험기금이 주도했다. 당시 한은도 2조원의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을 인수해 지원했다. 이 기금은 부실채권을 성공적으로 정리하고 2012년 종료됐다. 차라리 방만경영으로 부실만 키워온 산은에 대한 자금 지원보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부활시켜 지원하고, 금융기관 자본보전은 예금보험기금채권을 매입해 지원하는 대책이 바람직해 보인다.

제로금리·양적완화 병행한 미국

주택담보대출증권 인수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채택한 양적 완화 통화정책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안고 있는 ‘하우스푸어’(house poor) 문제를 고려할 때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Fed는 집값 폭락을 방치하면 대공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1차 양적 완화(2009년 3월~2010년 3월)를 통해 1조4500억달러, 3차 양적 완화(2012년 9월~2013년 12월)를 통해 6400억달러의 주택저당채권을 매입했다. 그 결과 미국 주택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 글로벌 금융위기 시 135%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05%로 낮아져 소비가 살아나면서 경기가 회복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 143%였던 동 비율이 최근 170% 수준까지 상승해 소비를 짓누르고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2008년 9월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이의 심각성을 간파한 Fed는 10월에 제로(0)금리정책을 도입하고 2009년 3월부터 국채와 주택저당채권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 완화 통화정책을 썼다. 영국도 2009년 3월부터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통화정책에 가담했다. 일본은행은 2012년 12월, 유럽중앙은행은 2015년 3월부터 국채를 매입하는 미국식 양적 완화 정책대열에 합류했다.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미국, 영국의 양적 완화 정책과 2012년 12월, 2015년 3월부터 시작된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정책 결과 이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본원통화공급 비율은 급격히 커졌다. 미국, 영국은 22% 수준까지, 일본은 50% 수준까지 치솟았다. 반면 유로존과 중국은 10% 수준, 한국은 7%대에 머물렀다. 그 결과는 성장률로 나타났다. 미국과 영국은 2015년 성장률이 각각 2.5% 2.2%를 달성, 잠재성장률 수준인 2.5%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일본은 GDP의 245%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2014년 시행한 소비세 인상 여파로 회복되던 성장률이 다시 주저앉고 있다. 뒤늦게 양적 완화 대열에 합류한 유로존과 확장적 통화정책에 그친 중국은 여전히 성장 둔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도 잠재성장률 수준을 밑도는 성장에 그치고 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대공황기에 통화량을 엄격히 규제한 금본위제를 먼저 폐기한 영국, 일본 등이 먼저 회복되고 금본위제를 나중에 폐기한 미국, 독일 등은 경기회복이 더뎠다.

양적완화 美·英 성장세 회복

경기회복이 정상궤도에 들어섰다고 판단한 미국은 지난해 12월 2008년 9월 이후 유지해온 제로금리를 중단하고 연방기금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반면 일본은행, 유럽중앙은행은 일제히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거나 마이너스 금리폭을 확대하고 중국도 지급준비금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확대공급하는 등 주요국 간 통화정책의 대분기(大分岐)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주요국 간 통화정책 대분기는 자본이동과 환율 등 국제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면서 글로벌 주식·채권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환율예측을 어렵게 해 글로벌 교역까지 둔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침체하고 있는 국내 경제여건상 한국판 양적 완화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적 완화 정책과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논쟁은 반드시 금리가 제로수준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양적 완화 정책은 금리를 낮춰도 기업이나 가계가 통화에 대한 수요가 없어 돈이 돌지 않는 경우 돈이 필요한 부문에 중앙은행이 직접 통화를 공급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한국은 본원통화도 상대적으로 적게 공급되고 있지만 본원통화 대비 통화량 비율인 통화승수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위기국면에서 불확실성에 대비해 은행과 개인의 현금보유 수요가 증가하거나 금융불확실성에 대비해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성 금융자산에 돈을 넣어 두는 경향이 증가하는 시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에도, 미국 대공황 때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시기에는 금리 인하만으로는 통화공급이 되지 않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

금리인하만으론 경제회복 미흡

이때는 특정 부문에 중앙은행이 직접 통화를 공급해 경기회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반드시 제로금리일 필요는 없다. 충분히 금리를 낮춰도 통화승수가 하락하는 등 통화공급이 되지 않아 전통적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양적 완화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주택부문 정상화를 위한 주택저당채권매입이나 특정 정부투자정책을 위한 국채매입일 수도 있다. 미국은 이 두 정책을 병행했다.

지금 한국은 구조조정을 위한 통화공급과 침체일로의 경기를 반등시키기 위한 양적 완화 정책이 모두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과 경기 회복이 안 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 공허한 이론적 논쟁이나 정쟁보다 지금 한국 현실에 가장 맞는 대안을 찾아내 벼랑 끝에서 주저앉고 있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