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프리미엄 빌트인 주방가전 브랜드인 '셰프컬렉션 빌트인' 제품이 아파트에 설치된 모습. /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빌트인 주방가전 브랜드인 '셰프컬렉션 빌트인' 제품이 아파트에 설치된 모습. / 사진=삼성전자 제공
[ 박희진 기자 ] "요즘 지은 새 아파트엔 빌트인(built-in·붙박이) 가전이 많이 들어가는데 손님들 대부분이 선호하지 않는 편이에요."

서울 서대문구 공인중개사 정모씨는 최근 손님들에게 빌트인 가전이 들어간 아파트를 소개할 때마다 탐탁지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기존에 쓰고 있는 제품이 있거나 빌트인 제품이 원하는 사양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씨는 "빌트인 가전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쓰던 가전제품을 베란다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파트가 지어지고 몇 년 후 이사를 오면 유행이 지난 제품을 써야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수요와는 달리 최근 신축 아파트엔 오히려 빌트인 가전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건설사들의 브랜드 차별화 전략에 국내 가전업체들의 빌트인 사업 강화가 더해지면서다. 선호도가 높지 않은 국내 빌트인 시장을 가전업체들이 일제히 정조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빌트인 시장서 '돌파구' 찾는 가전업계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빌트인 가전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4500억~50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시장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전체 가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20% 수준에 그친다. 빌트인 가전 시장 비중이 70%에 달하는 유럽과 대조적이다.

규모가 작은 만큼 경쟁 상대는 적고 성장 잠재력은 풍부하다. 가전 업계가 일반 가전 시장의 치열한 경쟁과 성장 둔화에 대한 돌파구를 빌트인 시장에서 찾고 있는 이유다.

빌트인 가전의 확대는 최근 전자업체들이 추구하고 있는 프리미엄 전략 및 B2B(기업 간 거래) 시장 공략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근 국내 가전업체들은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빌트인 가전은 통상 프리미엄 제품군에 속한다. 발열 조절과 통풍에 필요한 특수 기술을 적용해 제품 자체도 비싼 데다 최근엔 프리미엄 브랜드를 입은 빌트인 제품도 늘어나고 있다.

가전업체들의 또 다른 새 먹거리는 B2B 시장이다. B2B 시장은 포화 상태의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고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빌트인 가전은 대부분 건설사와 주방가구 업체들을 통해 판매가 이뤄지는 대표적인 B2B 사업에 해당한다. 최근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일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B2B 거래의 비중이 더 크다.
LG전자가 지난달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선보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 사진=LG전자 제공
LG전자가 지난달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선보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 사진=LG전자 제공
◆"빌트인은 예쁘다"…프리미엄 빌트인 경쟁 시동

국내에서 빌트인 가전은 아직 성장 초기 단계로 소비자들에게 친숙하지 않다. 비싼 가격도 부담이지만 개인 생활 습관이나 취향과 무관하게 다른 사람이 쓰던 제품을 쓴다는 데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그럼에도 업계는 국내 빌트인 시장의 성장을 긍정적으로 점치고 있다. 가전 시장이 개별 제품이 아닌 공간 비즈니스로 바뀌면서 패키지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전제품의 공간 활용도와 디자인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빌트인 가전이 들어가는 주방은 일관성이 있어 깨끗하고 예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공간 활용도가 높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 빌트인 사장에선 프리미엄 브랜드 간 대결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프리미엄 빌트인 주방가전 브랜드인 '셰프컬렉션 빌트인'을 국내에 출시했다. 이후 고급 아파트 단지나 빌라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수주를 따내며 국내 빌트인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최근엔 서울 강남구 개포 레미안블래스티지에 셰프컬렉션 냉장고와 전기레인지를 옵션이 아닌 기본 빌트인 제품으로 공급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2018년까지 국내 빌트인 시장 규모를 두 배 넘게 키워 1조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LG전자는 다음달 초(超)프리미엄 빌트인 브랜드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는 최고급 얼음정수기냉장고와 전기오븐 전기레인지 후드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로 구성된다. 제품을 전부 구입하려면 약 2000만원이 넘게 든다.

LG전자 관계자는 "아직까지 빌트인 가전은 B2B 시장이 중심인 만큼 국내 건설사들과 프리미엄 아파트 및 고급 빌라 분양 시 옵션으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채택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