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재원마련 논란 2라운드] "국책은행 자본확충, 국회 우회하려고 한은 발권력 동원하면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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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쟁점, 전문가에게 듣는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둘러싼 논쟁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한국형 양적 완화’를 둘러싼 제1라운드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긴 채 종료됐다. 실체 있는 논쟁은 이제부터다. 재원 마련의 열쇠를 쥔 재정당국(정부)과 통화당국(한국은행)이 각자의 셈법을 드러내면서 쟁점이 구체화됐다.
정부는 재정 투입의 복잡한 절차를 내세워 한은이 발권력(통화를 발행하는 것)을 동원해 앞장서주길 기대한다. 한은은 특정 산업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전례를 남길 수 없다고 맞선다. 논쟁을 유발시킨 구조조정은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인 만큼 아무리 시급해도 제대로 된 논쟁을 하고 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2라운드 논쟁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세 가지 이슈를 재정·통화정책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정리한다.
(1) 재정이 우선이냐, 발권력이 우선이냐
"몇兆 들어가는데 급하다고 국회 설득 생략하나"
정부가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한은의 역할을 끌어들인 이유는 ‘시급함’이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하려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치적 쟁점이 되면 정부엔 부담이다. 이에 비해 발권력 부담은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려면 세금을 걷거나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이는 조세저항을 부른다”며 “발권력 동원의 유혹에 정부가 빠지기 쉬운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돈찍기 역시 국민 부담이란 점에서 ‘눈속임 조세’라는 지적도 있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은 “돈을 찍으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국민의 물가 부담으로 돌아온다”며 “지금은 저물가라 괜찮아보여도 향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후폭풍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시급성을 얘기하는 정부에 우선 책임을 묻자는 주장도 있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책은행을 관리해온 정부가 구조조정을 미루다 부실이 난 것 아니냐”며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재정 투입을 우선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동의 절차가 피곤하다는 핑계로 우회하지 말고 정면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부족하다면 불가피하게 한은에 요청하는 것이 옳은 절차라는 지적이다.
발권력 결정의 권한 문제도 있다. 국회와 달리 한은 총재와 금융통화위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사람이 아니다. 이들이 몇 조원에 이르는 발권력 활용을 손쉽게 결정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한은이 수출입은행 출자 형태로 정부의 구조조정을 지원한 것을 둘러싸고 2001년 국감에선 “한은 금통위가 국민의 뜻도 묻지 않고 발권력을 동원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2) 韓銀 역할 어디까지
"특정산업 구조조정 위한 돈찍기 특혜논란 불러"
일부에선 경제 위기 때마다 중앙은행은 ‘소방수’ 역할을 했으며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한은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4년 카드 사태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과 예보채를 사들인 사례가 있다. 해외에선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 중앙은행(Fed)은 물론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이 전면에 나서 위기 대응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권력을 동원했다. 정부 역시 이런 사례를 들어 한은의 역할에 불만이 많다.
하지만 여기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위기 때도 중앙은행의 역할과 범위에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 Fed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위기 때 한은이 돈을 찍어 금융시장을 지원한 적은 있지만 이는 ‘금융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명분으로 한 것”이라며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이 아니라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번 경우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특혜 논란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설명이다.
안재욱 교수는 “선진국에선 위기 때마다 무분별한 통화 발행이 문제 돼 여러 장치를 마련해왔다”며 “통화정책을 테일러 룰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는 법이 미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 계류 중인 것도 이 같은 배경”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1951년 ‘재무부와 Fed 간 합의(1951 Treasury-FedAccord)’를 통해 중앙은행은 특정 부문에 대한 자금 지원 및 신용위험을 피해야 한다고 정했다.
2차대전 때 발권력 동원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자 정부와 중앙은행이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것이다. 금융위기 때도 역할 문제가 쟁점화하자 정부와 Fed가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인식을 공유했다.
(3) 韓銀 출자냐, 대출이냐
"과거 韓銀의 수출입은행 출자도 편법이었다"
정부는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한은이 출자하게끔 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4일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출자보다는 대출이 적절하다”며 거부 입장을 보였다. 대출 방식으로 하면 담보 설정 등이 가능해 중앙은행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은행자본확충펀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비판도 나왔다. 국책은행이 망할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한은 손실 또한 걱정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손실 최소화 원칙이란 한은이 돈을 어딘가에 찍어주면 다시 한은에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라며 “국책은행에 한 번 출자하면 사실상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돈’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AIG와 GE 등에 유동성을 지원할 때도 출자 대신 대출을 택해 상환 절차를 분명히 했다는 설명이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은 “한은이 출자해주면 나중에 갚을 필요가 사실상 없다”며 “구조조정을 출자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이나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을 앞당겨 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중앙은행의 다각적인 노력이 더 일찍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구조조정 기업의 덩치가 크다 보니 인수 주체가 없고 고용 문제도 시급하다”며 “대출이 가능했다면 한은이 더 일찍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었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과거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를 유도하기 위해 수은법을 개정한 것은 편법이라고 주장한다. 한은법상 중앙은행은 특정 금융회사 및 개별 기업에 출자하지 못 하도록 돼 있으나, 수은법을 일종의 ‘특별법’으로 만들어 한은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김유미/황정수/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정부는 재정 투입의 복잡한 절차를 내세워 한은이 발권력(통화를 발행하는 것)을 동원해 앞장서주길 기대한다. 한은은 특정 산업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전례를 남길 수 없다고 맞선다. 논쟁을 유발시킨 구조조정은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인 만큼 아무리 시급해도 제대로 된 논쟁을 하고 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2라운드 논쟁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세 가지 이슈를 재정·통화정책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정리한다.
(1) 재정이 우선이냐, 발권력이 우선이냐
"몇兆 들어가는데 급하다고 국회 설득 생략하나"
정부가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한은의 역할을 끌어들인 이유는 ‘시급함’이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하려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치적 쟁점이 되면 정부엔 부담이다. 이에 비해 발권력 부담은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려면 세금을 걷거나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이는 조세저항을 부른다”며 “발권력 동원의 유혹에 정부가 빠지기 쉬운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돈찍기 역시 국민 부담이란 점에서 ‘눈속임 조세’라는 지적도 있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은 “돈을 찍으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국민의 물가 부담으로 돌아온다”며 “지금은 저물가라 괜찮아보여도 향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후폭풍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시급성을 얘기하는 정부에 우선 책임을 묻자는 주장도 있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책은행을 관리해온 정부가 구조조정을 미루다 부실이 난 것 아니냐”며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재정 투입을 우선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동의 절차가 피곤하다는 핑계로 우회하지 말고 정면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부족하다면 불가피하게 한은에 요청하는 것이 옳은 절차라는 지적이다.
발권력 결정의 권한 문제도 있다. 국회와 달리 한은 총재와 금융통화위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사람이 아니다. 이들이 몇 조원에 이르는 발권력 활용을 손쉽게 결정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한은이 수출입은행 출자 형태로 정부의 구조조정을 지원한 것을 둘러싸고 2001년 국감에선 “한은 금통위가 국민의 뜻도 묻지 않고 발권력을 동원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2) 韓銀 역할 어디까지
"특정산업 구조조정 위한 돈찍기 특혜논란 불러"
일부에선 경제 위기 때마다 중앙은행은 ‘소방수’ 역할을 했으며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한은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4년 카드 사태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과 예보채를 사들인 사례가 있다. 해외에선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 중앙은행(Fed)은 물론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이 전면에 나서 위기 대응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권력을 동원했다. 정부 역시 이런 사례를 들어 한은의 역할에 불만이 많다.
하지만 여기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위기 때도 중앙은행의 역할과 범위에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 Fed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위기 때 한은이 돈을 찍어 금융시장을 지원한 적은 있지만 이는 ‘금융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명분으로 한 것”이라며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이 아니라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번 경우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특혜 논란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설명이다.
안재욱 교수는 “선진국에선 위기 때마다 무분별한 통화 발행이 문제 돼 여러 장치를 마련해왔다”며 “통화정책을 테일러 룰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는 법이 미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 계류 중인 것도 이 같은 배경”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1951년 ‘재무부와 Fed 간 합의(1951 Treasury-FedAccord)’를 통해 중앙은행은 특정 부문에 대한 자금 지원 및 신용위험을 피해야 한다고 정했다.
2차대전 때 발권력 동원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자 정부와 중앙은행이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것이다. 금융위기 때도 역할 문제가 쟁점화하자 정부와 Fed가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은 인식을 공유했다.
(3) 韓銀 출자냐, 대출이냐
"과거 韓銀의 수출입은행 출자도 편법이었다"
정부는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한은이 출자하게끔 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4일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출자보다는 대출이 적절하다”며 거부 입장을 보였다. 대출 방식으로 하면 담보 설정 등이 가능해 중앙은행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은행자본확충펀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비판도 나왔다. 국책은행이 망할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한은 손실 또한 걱정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손실 최소화 원칙이란 한은이 돈을 어딘가에 찍어주면 다시 한은에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라며 “국책은행에 한 번 출자하면 사실상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돈’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AIG와 GE 등에 유동성을 지원할 때도 출자 대신 대출을 택해 상환 절차를 분명히 했다는 설명이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은 “한은이 출자해주면 나중에 갚을 필요가 사실상 없다”며 “구조조정을 출자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이나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을 앞당겨 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중앙은행의 다각적인 노력이 더 일찍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구조조정 기업의 덩치가 크다 보니 인수 주체가 없고 고용 문제도 시급하다”며 “대출이 가능했다면 한은이 더 일찍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었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과거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를 유도하기 위해 수은법을 개정한 것은 편법이라고 주장한다. 한은법상 중앙은행은 특정 금융회사 및 개별 기업에 출자하지 못 하도록 돼 있으나, 수은법을 일종의 ‘특별법’으로 만들어 한은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김유미/황정수/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