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강한 신문 한경 JOB] LG생활건강 센베리 퍼퓸하우스 "제품에 향 입혀 감성자극…우린 코 쓰는 예술가죠"
지난 3일 오후 경기 안양시 박달동에 있는 LG생활건강 소유의 건물을 찾았다. LG생활건강은 이 건물 5층을 ‘센베리 퍼퓸하우스’로 이름 붙이고 향(香) 연구개발(R&D)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에서 맡아봄 직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곳에서 만난 윤보임 LG생활건강 센베리 퍼퓸하우스 로즈베리파트 책임퍼퓨머(40·사진)는 “향기라는 감성을 입혀 제품을 더욱 빛나도록 하는 게 조향사(퍼퓨머)”라며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그는 17년째 향을 개발하며 연구하고 있다.

그의 업무는 기존에 있던 향을 단순히 조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가 좋아하는 향에 대해 조사하고, 제품 개발 단계에서 마케터와 함께 제품에 어떤 향을 입힐지 고민한다. 송이버섯 향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화장품 브랜드 ‘후’의 환유라인을 비롯해 공진향라인, 천기단라인, 자연향을 덧입힌 ‘숨37’이 윤 책임퍼퓨머의 코와 손끝을 거쳐 나왔다.

조향사는 화장품, 생활용품의 향을 제조하는 퍼퓨머(perfumer)와 음료 및 과자의 향을 제조하는 플래버리스트(flavorist)로 구분된다. 국내에는 100여명의 조향사가 있다. 이 중 플래버리스트가 6 대 4 정도로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센베리 퍼퓸하우스는 2006년 2월 문을 열었다. 2004년 12월 LG생활건강 대표이사에 취임한 차석용 부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차 부회장은 당시 “국민소득이 2만~3만달러로 올라가면 소비자에게 기능을 넘어 감성을 파는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센터를 대표이사 직속으로 두게 했다. 3~4명뿐이던 LG생활건강 향료연구팀은 10년 새 20여명의 조향사가 근무하는 R&D센터로 성장했다.

이화여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윤 책임퍼퓨머는 1999년 LG화학 향료연구팀에 입사했다.

그는 조향사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가장 먼저 외국어 구사능력을 꼽았다. 아직 한국은 향에 대한 연구 노하우가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런 만큼 이들 국가의 최신 연구결과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는 “소비자의 향, 패션, 컬러 감성을 재빨리 파악하는 트렌드 감지 능력과 이를 제품화하는 마케팅 능력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덧붙였다.

윤 책임퍼퓨머는 조향사를 “코를 쓰는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매년 독감이 유행하는 시즌에 연구소는 초비상이 걸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은 감기에 걸려도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초년 시절에 감기 걸렸다고 말하면 선배들에게 ‘기계 고장났구먼’하고 놀림받기도 했어요.”

조향사는 자극적인 음식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코 관리를 위해 금연과 금주는 필수다. 출근할 때 향수를 뿌려서도 안 된다. 매일 아침 ‘향 테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센베리 퍼퓸하우스 소속 조향사들은 천연향 300여종, 합성향 500여종을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별로 선호하는 향이 다르다”고 말했다. “아시아인은 가볍고 시원한 향을 선호하지만, 유럽인은 우리가 ‘강한 향수를 뿌렸다’는 느낌을 주는 무거운 향을 선호합니다. 미국인은 과거에는 꽃향기를 좋아했지만 요즘은 달콤한 디저트향의 향수를 애용하지요.”

그에게 “직업에 따라 어울리는 향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술술 대답했다. “화이트칼라 직장인이라면 물의 느낌을 주는 상큼한 아로마 시트러스 향수가 적합합니다. 봄을 상징하는 노란색 패션을 입은 20대 여성이라면 꽃향기가 은은한 화이트 플로어 향이 좋을 것 같고요.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는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라벤더 향, 사랑을 꿈꾸는 연인에게는 은은한 샌달우드 향을 추천해 드립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