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 변성현 기자
지난 20일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 변성현 기자
[ 김봉구 기자 ] 6000명 중 24명. 교육부의 최근 3년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실태조사 결과 드러난 자기소개서 신상기재 건수다. 부모나 친인척이 시장, 법원장, 법무법인(로펌) 대표임을 적었다. 입시부정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24건이 많은지 적은지부터 평가에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로스쿨 입시의 근본적 한계까지, 논란은 확대 재생산됐다. 그동안 로스쿨은 고액 등록금으로 인해 ‘금수저’ 논란을 빚어왔다. 자소서·면접 등 정성평가 비중이 커 ‘현대판 음서제’ 우려마저 나오던 차에 실제 신상기재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로스쿨 측은 반론을 펼쳤다. 점수로 당락을 가르는 사법시험에 비해 다양한 배경의 학생을 선발 가능한 로스쿨 입시의 장점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로스쿨 입시가 특별전형과 장학금 지급으로 ‘흙수저’에게 문을 열어놨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대호 사무실에서 만난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사진)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로스쿨에 대한 비판은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을 겨냥한 게 아니다. 10명 중 9명 몫이 잘 운영되더라도 나머지 1명 몫에서 특권층 자녀가 혜택을 받을 여지가 있다면 문제”라고 꼬집었다.

교육부의 로스쿨 조사가 미진했다고 판단, 감사원 ‘국민감사’ 청구에 앞장선 나 전 회장은 “아무리 다양성이 좋은 가치라 해도 시험의 기본은 공정성”이라고 강조했다. “다양성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어야지, 절대 특권층 자녀를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라고도 했다.

나 전 회장은
나 전 회장은 "로스쿨 입시의 기본은 다양성보다 공정성"이라고 강조했다. / 변성현 기자
- 로스쿨 입시의 핵심문제는 뭔가.

“정성평가든 정량평가든 시험의 기본은 공정성이다. 그런데 이번에 로스쿨 입시의 공정성 담보장치가 상당히 부실했음이 드러났다. 로스쿨 교수 개개인의 자의적 판단뿐 아니라 학연, 지연까지 얽히지 않겠느냐. 불공정입학으로 귀결될 개연성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로스쿨은 ‘다양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한다.

“다양성을 위해 공정성을 ‘일부’ 훼손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 사례를 많이 드는데, 미국은 면접으로만 뽑아도 공정성이 유지된다는 사회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다.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최근엔 미국도 이런 방식의 평가가 과연 공정한지, 지위세습 수단으로 전락한 건 아닌지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 로스쿨은 취약계층을 충실히 뽑고 있다는 입장인데.

“물론 로스쿨 입시가 사회적 약자들에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닌 경우도 있다는 게 밝혀지지 않았나. 상황이 이런데 로스쿨들은 신상기재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10명 중 9명이 좋은 취지에 부합한다 해도 1명이라도 고관대작 자녀에 특혜가 된다면 문제다. 왜 이건 말하지 않는 것인가.”

- 한 명만 문제라 해도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건가.

“로스쿨 입시에 문제가 발견됐으니 고쳐야 한다. 특권층 자녀가 편법으로 들어오는 걸 막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하지만 로스쿨 측은 ‘다양성을 위한 제도’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입시부정 의혹에 대해 사과 한 마디 안 했다. 이 정도로 문제의식이 없다면 로스쿨 입시의 자발적 개선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나.”

나 전 회장은 감사원의 로스쿨 국민감사 청구를 주도하고 있다. / 변성현 기자
나 전 회장은 감사원의 로스쿨 국민감사 청구를 주도하고 있다. / 변성현 기자
나 전 회장은 처음부터 로스쿨에 회의적이진 않았다. 로스쿨 도입 논의가 시작될 무렵엔 긍정적으로 기대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로스쿨 입시의 공정성 문제가 하나 둘 불거지면서 비판에 앞장서게 됐다.

그는 사시를 존치시켜 로스쿨과 경쟁하고, 제도상 장점을 결합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또 사시 존치 논란과 관련해 국회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결론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 로스쿨 문제는 결국 사시 존치 쟁점으로 귀결된다.

“19대 국회에서는 사시 존치 법안이 폐기됐다. 4·13 총선이 지나서야 국회 차원에서 논의됐다. 20대 국회 초반엔 이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 존치면 존치, 폐기면 폐기, 국회가 양단간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차일피일 미루니 사시파, 로스쿨파 나눠 갈등을 빚는 것이다. 국회가 문제를 질질 끈 탓이다. 적어도 사시 존치 건에 관해선 그렇다.”

- 사시 준비 역시 로스쿨 못지않은 비용이 든다는 지적도 있는데.

“서울대 로스쿨 교수의 연구 결과인데 뭐하러 연구했는지 모르겠다. 사시도 다를 바 없으니 로스쿨 고비용을 감수하라는 얘기인가. 잘 짚어보자. 고정비용과 가변비용을 혼동한 오류가 있다. 로스쿨은 등록금 등 고정비용 자체가 많이 들어간다. 반면 사시는 가변비용이다. 1년 만에 합격할 수도 있다.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 사시와 로스쿨을 병행하자는 쪽인가.

“저소득층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해 장학금 주는 로스쿨과 가변비용 위주 사시를 병행하자. 경제 형편과 상관없이 법조인이 되는 길이 넓어질 수 있다. 양 제도를 병행하면 서로 경쟁하면서 견제하는 시스템이 된다. 아마 사시 존치론이 아니었다면 교육부의 로스쿨 입시 전수조사도, 로스쿨 등록금 인하도 없었을 것이다.”

- 로스쿨이 바뀌어야 할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고비용이 아니다. 핵심은 교육이다. 로스쿨은 사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길러낼 의무가 있다. 다양성도 필요하지만 변호사의 본질은 법률지식이다. 금융전문 변호사라 해도 금융이 아닌 법률을 잘 아는 게 우선인 거다. 명심하자. 로스쿨의 성패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 사시 존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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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