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헌법재판소가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뒤늦게 사실상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헌재가 정치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개정 국회법을 두고 다툼이 제기된 지 1년4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그리고 총선을 거쳐 여소야대 구조가 짜여진 지금에 와서야 정치권의 권력구조를 그대로 수용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지극히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논란이 된 소위 국회선진화법의 문제 조항은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여야 합의나 천재지변, 국가 비상사태’로 못 박은 국회법 85조 1항과 ‘신속안건처리 요건으로 재적 5분의 3의 가중다수결’을 규정한 같은 법 85조의 2 제1항이다. 이들 조항은 단순히 국회가 정하기 나름인 자율의 ‘운영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가동되면서 국회는 사실상의 의사 무능력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 어렵사리 통과되는 법률이라고 해도 대중영합적 법률들에 한정돼 조금만 복잡한 토론이 필요한 법안들은 아예 선진화법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국회는 능력도 의지도 상실하고 말았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회법을 고치려면 다시 5분의 3결이 필요한 자기모순에 봉착했던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의 5분의 3 가중다수결 조항이 헌법 제49조의 다수결 조항을 위반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헌재는 판단을 피해갔다. 우리 헌법은 제53조에서 국회재의결 요건으로 재적과반 출석에 출석 3분의 2를, 제63조 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 발의에 재적 3분의 1, 제64조 국회의원 제명에 재적 3분의 2 등 다양한 정족수를 열거하고 있다. 헌법개정에 국회재적 의원 과반의 찬성 요건을 둔 것도 마찬가지다.

헌법이 중다수결을 열거한 것은 이들 사안이 갖는 헌법적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5분의 3이라는 초중다수결을 임의로 설정해 일반 의안조차 사실상 심의를 불가능하게 한 것은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정족수에 대한 헌법적 평가와 질서체계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회는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속한다. 어떻게든 국회정상화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