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산업혁명 후 현대사회로 사회가 진화하면서 기업의 조직은 점점 커졌다. 기업들은 커지는 조직에 맞춰 ‘지식’을 유지·발전시키면서 내부 전문가를 교육·양성하기 위해 재무, 생산관리 등 ‘기능’ 중심 조직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기능 중심 조직의 문제점은 조직은 기능별로 구성돼 있지만 기업의 일은 기능별로 처리되지 않고 기본 처리단위라고 할 수 있는 프로세스의 ‘흐름’에 의해 처리된다는 것이다.

지적 노동의 표준화·계량화…'프로세스 혁신' 완성도 높인다
고객이 물건을 주문해서 배달받기까지의 기업 활동을 하나의 프로세스라고 하자. 이 간단한 프로세스는 주문을 받는 마케팅, 돈을 받는 재무, 거래를 인식하는 회계, 물건을 배달하는 생산관리 등 여러 기능별 부서들을 거치게 되고, 많은 업무 협조를 필요로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업무의 비효율성이 발생하며 거래 처리 시간이 소요된다.

하나의 프로세스가 많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면 그 비효율이 작을지 모르지만 하루에 수만 건이 일어나는 기업의 상품 주문 및 배달 프로세스라면 그 비효율은 매우 클 것이다. 만약 이것을 프로세스 중심 조직으로 바꾼다면 프로세스 하나를 전담하는 사람 또는 담당 주체가 생기고 업무 협조의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비효율을 야기하는 기능별 조직을 프로세스 기반 조직으로 진작에 재구성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프로세스 기반 업무시스템 구현을 위한 필요조건은 회계, 생산, 마케팅, 고객 정보 등의 전 조직 수준 공유 및 유지인데 이것은 데이터베이스(DB), 업무프로세스 표준화 및 자동화 등 고도의 정보기술(IT)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과거 기업은 구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현 가능한 IT가 있음에도 많은 기업들은 프로세스 기반 조직 구현에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든 중요한 정보시스템의 구현에는 조직의 변화가 크게 요구되며, 자연히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조직 구성원들의 저항이 따른다. 일찍이 저서 《권력이동》에서 앨빈 토플러가 이야기했듯이 경영 권력은 정보를 소유하는 자에게 있으며, 이 정보의 소유구조를 바꾸는 정보시스템의 도입은 정보의 독점적 소유권을 잃게 되는 개인 또는 부서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와 같은 저항은 적극적·소극적 형태로 나타나며 많은 경우 정보시스템 도입의 실패로 귀결된다. 이 밖에도 정보시스템은 도입에 따른 단기적 감원의 원인으로 비난받았으며, IT 부족으로 인한 실패로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와 같은 부작용들에 의한 실패로 인해 ‘BPR’로 불리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은 부정적 이미지가 많았다. 문제점 중에서 인사관리적 실패 요인 해결을 관점으로 한 변화관리(change management)가 부각됐다. 변화관리는 조직 구성원이 그 변화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변화에 의해 구현되는 기업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받아들이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경영정보시스템은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시스템이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 중의 하나가 큰 덩치 탓에 말단 기관의 정보가 뇌까지 이르는 시간이 오래 걸려 반응 대응이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하듯이, 많은 조직원을 거느린 기업은 CEO의 의사결정이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보시스템에 의해 말단 직원의 경영정보까지 CEO가 실시간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면 이 조직은 인간의 민첩성을 가질 수 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가 신혼여행 시 휴양지 바다 위 그의 요트에서 늦은 밤에 실시간으로 오라클 자회사의 재무제표를 세부 내용까지 대시보드를 통해 자세히 분석해보고, 자회사 경영자와 국제전화로 소통하듯이 언제 어디에서든 실시간 의사결정과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정보시스템, 특히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구축을 가장 원하는 것이 CEO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수용을 위한 조직의 저항을 극복해야 하며 정보관리부서의 역량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 많은 중소기업은 새로 도입한 정보시스템이 사장된 채 있거나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고, 다시 옛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경영자의 의욕과 시스템 구현 시 효과만 보고 조직의 역량 진단 없이 무리하게 정보시스템을 도입한 조직에는 오히려 큰 해악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 생산관리 시스템의 혁신이 현대 경영의 시발점이 된 공장 프로세스 개선이었다면, 현재의 ERP는 기업 업무 프로세스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육체 노동자인 블루칼라의 업무혁신, 업무 프로세스의 혁신에 이어 기대되는 것은 비즈니스 프로세스 관리시스템(BPM: business process management)에 의한 지적 노동자인 화이트칼라 업무의 혁신일 것이다. 그동안 지적 노동 프로세스가 시스템화될 수 없었던 것은 지적 노동의 표준화와 업무 진행, 성과에 대한 계량적 분석이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관리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팀 수준으로 하는 업무에서 각자의 일이 결합될 때 누구 때문에 업무가 며칠째 진척이 없는지 매일 게시하고 체크하는 등 화이트칼라 업무를 블루칼라 업무처럼 ‘컨베이어벨트화’하는 시스템이 도입되고, 이메일을 통한 메시지의 송수신 활동 정도와 업무공헌 정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활동의 정도를 평가하는 방법 등도 제시되고 있다. 그동안 성과의 측정, 평가가 어려웠던 지식의 생성·관리도 지식관리시스템(KMS: knowledge management system)에 의해서 표준화·계량화돼 관리되고 있고 그 완성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지적 화이트칼라 업무의 관리, 모니터링 방법의 강화는 경영관리에서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의 감소에 큰 성과를 내고 있고 앞으로 더 큰 개선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칼라의 지적 노동 부분의 업무 개선을 넘어서 미래에 더욱 기대되는 것은 인공지능(AI)에 의한 지적인 개인 노동의 완전 대체일 것이다. 미래 정보시스템이 촉발할 경영환경의 혁신적 변화에 대해 조직과 개인은 어떻게 대응·변화해야 할 것인가. 미래 IT 발전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비가 경영계에 필요할 것이다.

■ 기능 중심서 프로세스 중심으로…‘BPR’ 경영혁신기법

1993년 마이클 해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새로운 경영정보 기술을 활용한 프로세스 기반 업무기법들을 집대성해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개념을 제안했다.

BPR은 기본 기능 중심조직을 프로세스 중심으로 혁신할 때 기존 업무에 있던 기본적인 가정부터 부정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것(fundamental rethinking)을 획기적이고 급진적으로 해 10~20%의 성과가 아닌 2~10배의 극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경영혁신기법이다.

IBM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IBM크레디트는 정보기술로 구현한 프로세스 기반으로 업무를 재구성해 기업·기능 간 소통의 비효율을 제거한 결과 자금 대여 결제 프로세스가 평균 7일에서 네 시간으로 줄어드는 등 생산성이 수십 배 높아지는 효과를 거뒀다.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해 업무를 재구성하는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 기법은 세계 유수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으며 많은 중소기업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BPR은 SAP, 오라클 등이 제공하는 기업의 전사적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의 근간이 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병준 < 서울대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