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열린 K옥션 여름경매에서 김환기 화백의 ‘무제 27-VII-72 #228’을 입찰에 부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K옥션 여름경매에서 김환기 화백의 ‘무제 27-VII-72 #228’을 입찰에 부치고 있다.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이 지난달 28일 여름 경매에 내놓은 김환기의 1972년작 점화가 54억원을 부른 현장 응찰자에게 팔려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하루 뒤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천경자의 1994년작 ‘우수의 티나’가 8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상반기 미술시장 1천억 '뭉칫돈'…위작 논란에도 상승세
미술시장 ‘대표주’로 꼽히는 김환기 천경자 박수근 정상화 등 유명 화가 작품과 고미술품 등이 고가에 팔리면서 서울옥션 K옥션 아이옥션의 올 상반기 미술품 경매에 898억원이 유입됐다. 군소 경매회사를 포함하면 낙찰총액은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경기 침체에 따른 국제 미술시장의 성장 둔화와 이우환·천경자 위작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 개 주요 미술품 경매회사의 상반기 낙찰총액은 전년 동기(628억원)보다 43% 급증했다. 평균 낙찰률도 작년 말보다 1.4%포인트 오른 81.7%를 기록했다.

◆김환기 작품 줄줄이 상한가

김환기의 작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술품 거래를 사실상 주도했다. 그의 1972년작 점화 ‘무제’(54억원)를 비롯해 또 다른 추상화 ‘무제’(48억6000만원), ‘무제 3-V-71 #203’(45억6000만원) 등이 40억~50원대로 치솟으며 미술시장의 ‘황제주’임을 과시했다. 반추상화 ‘창공을 날으는 새’(12억원), ‘달과 항아리’(5억8000만원) 등도 고가에 팔렸다.

서울옥션과 K옥션은 김환기 작품 30여점을 팔아 2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것은 수만 개의 점으로 구성된 추상화 특유의 조형성이 컬렉터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컬렉터들이 김환기 작품을 구입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요즘은 대부분 외국인이 산다”며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단색화의 원조라는 점도 주목받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천경자의 ‘정원’이 17억원에 팔려 자신의 최고가 기록을 세웠고, 박수근의 ‘아이를 업은 소녀’(9억5000만원)와 ‘시장’(4억2000만원)도 고가 낙찰 대열에 합류했다.

◆홍콩은 K아트의 전진기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홍콩이 세계로 향하는 K아트 수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은 홍콩에서 잇달아 경매를 열어 473억원어치(서울옥션 308억원, K옥션 165억원)의 그림을 판매했다. 작년 상반기(276억원)의 1.5배가 넘는다. 경매된 작품은 대부분 추정가 범위보다 훨씬 비싸게 팔려 한국 현대미술이 아시아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평가됐다.

단색화 가격도 홍콩에서 강세를 보였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와 정상화의 ‘무제 97-10-5’가 지난달 홍콩 경매에서 나란히 10억950만원에 팔렸다. 박서보의 ‘묘법 4-78’도 8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윤형근 하종현의 작품도 2억~3억원대로 치솟았다.

고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국가 지정문화재까지 경매에 올라와 시장을 달궜다.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51호인 고려시대 불상 ‘철조석가여래좌상’은 지난 3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20억원에 낙찰됐다. 단원 김홍도의 ‘시의 도첩’(3억5000만원), 겸재 정선의 ‘성류굴’(3억5000만원)도 경합 끝에 고가에 팔렸다.

◆“저금리 시대, 그림은 안전한 투자처”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저금리 시대를 맞아 비교적 안전한 투자처로 평가받는 유명 화가의 그림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량 자산을 ‘쇼핑’(저가 매수)할 기회로 봤다는 얘기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면서 미술시장에 유입되는 현금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는 자금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일부 작가의 그림 가격이 많이 비싸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더 오를 여지가 있다”며 “김환기 천경자 정상화 박서보 등 인기 화가들의 작품값 상승세가 가파른 점이 올해 경매시장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