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共·生 연구소’ 열고 대선 준비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4일 “개혁적 보수 정권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은 이날 서울 명륜동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지난 4월 총선에서 선택을 받지 못해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어 여러 가능성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총선 패배 뒤 100여일간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오 전 시장은 이렇게 대선 출마와 관련한 질문에 딱 부러진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서도 의욕을 드러냈다. 오 전 시장은 1시간 30여분간 이뤄진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 발전 방안, 사회 양극화, 개헌, 외교, 안보 등 각 분야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소상하게 밝혔다.

▷‘잘 나가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변호사 시절 환경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환경시민단체 일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일조권 소송하다 환경에 눈을 떴다. 환경시민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니 입법화 작업이라는 데서 장애물을 만났다. 성과를 내려면 입법을 해야 하는데 국회의원 만나기도 어렵고 되는 일도 없었다. 그게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직접 정치에 들어가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 문제가 발단이 돼 정치에 참여한 것이다. 2000년 16대 국회에 들어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일했다. 환경 운동에 초점이 맞춰진 의정활동을 했다. 의원이 되고 보니 시야도 좀 넓게 가질 필요를 느꼈고, 환경만 중요한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심사도 넓어졌다.”


▷내년 대선에 출마할 건가.

“지난 4월 총선에서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능성을 놓고 고민 중인 단계다. 대통령이 된다고 하는 것은 준비가 착실하게, 기품있게 돼야 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 제도가 30년 가까이 시행하다 보니 국민 사이에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갈망이 아주 크다. 본인의 성공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 미래를 생각할 때 성공한 정권이 돼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런 준비가 돼 있느냐를 생각한다. 인적자원도 풍부하게 준비해야 하고, 정책 콘텐츠도 깊이있게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국회가 아닌)원외에 있으면서 충실하게 되겠느냐라고 하는 근본적인 걱정이 있다. 그래서 고민이 깊다.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이란 대명제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내가 됐든 다른 주자가 됐든 이른바 개혁적 보수 정권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큰 틀의 대전제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그(정권 재창출) 과정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갖고 있다.”


▷대선에 출마한다면 화두를 뭘로 잡을 예정인가.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어느 후보도 상황 인식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 일자리 부족이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때로는 분노케 할 정도다. 그런 상황을 타개할 비전을 누가 국민 여러분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느냐가 다음 선거의 화두라고 생각한다. 산업화를 속도 있게,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경쟁이라는 화두가 전면에 있었다. 경쟁이 위대한 경제적 성취를 이룬 원동력이 됐다. 이제는 화두가 경쟁에서 공존으로 옮겨져야 하는 시점이다. 극심한 경쟁 과정에서 소외되고 뒤처진 분들과 동일한 출발선상에 설 수 조차 없었던 분들까지 다 보듬어 함께 나아가야 하는 단계에 왔다. 국민소득이 실질구매력으로 3만달러를 넘어선 정도면 다 함께 보듬어 안고 같이 가야 하는데 지금 빈부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소득 상위 10%가 국부 비율의 최소한 50%, 많게는 66%까지 차지한다. 하위 50%가 차지하는 국부는 2% 밖에 안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회 양극화에 대해 80% 이상의 대중이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에선 화두가 그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누가 진정성을 담아 양극화 해법을 모색하는 자세를 보이느냐, 이게 다음 대선의 화두가 아니겠느냐고 보고 있다.”


▷사무실 이름을 ‘공(共)·생(生) 연구소’라고 한 게 그런 이유인가.

“그렇다. 그런 고민을 담았다. 처음에는 쉽게 풀어서 ‘고르고 바른 사회 만들기’라고 할까 했는데 많이 들은 것 같아서 그렇게 지었다.”


▷책을 쓰고 있는데, 무슨 내용인가.

“제목은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춘 개헌논의가 우후죽순 나오고 있다.지난번 100분 토론 방송에 나간 것을 계기로 개헌을 논의하다 보니 정치인마다 조금씩 목적이 다르더라. 요약하자면 현 시점에서 헌법이 개정된지 30년 만에 개헌 논의를 한다면 제대로 하자는 게 책의 주요 내용이다. 권력구조만 바꾸자는 ‘원포인트 개헌’ 얘기는 굉장히 정략적이다. 정파적 유불리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삶이 고달프고 분노할 지경인데 그런 사회상을 헌법적 가치로 승화시켜 사회분위기를 일대 대전환하는 국민적 통합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개헌 논의 자체가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단점이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하자고 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제왕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역기능이 있다면 4년 중임제 정도로 바꿔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게 하고, 대통령 힘을 분산시켜서 합리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정도로 보완하면 되지 틀 자체를 갑자기 바꿔 내각제로 가자, 또는 대통령은 형식적으로만 두고 사실상 내각제인 이원집정부제를 하자는 논의는 상당히 정파적이다.

19대 국회 전에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 이 법을 만든 배경은 국회가 갈등을 생산해내는 진원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국회는 갈등을 조정해내는 역할이 아니라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 어떨 때는 폭력까지 난무하는 것이 부끄럽고 이를 개선하자고 해서 ‘틀’을 바꿨는데 어땠나. 국회선진화법으로 국회는 훨씬 무능해졌고, 법 하나도 처리를 못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는 커녕, 갈등을 더 조장하는 후진화법이 돼버렸다. 바로 이게 제도적 ‘틀거리’를 한꺼번에 바꾸며 일어난 일이다. 제도 개선을 하자면 기존의 시행착오를 절대 무시하면 안된다. 잘하니 못하니 해도 대통령 5년 단임제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을 만들어냈다. 외환보유고 세계 6~7위, 국방력 10위 언저리를 비롯해서 R&D(연구 개발) 투자가 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1위다. 우리가 무시해서 이야기 안해서 그렇지 국가적 견지에서 보면 굉장한 성과를 이뤄낸 것이 대통령 단임제 5년제다. 이걸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의 요지는 그런 걸 보완하는 수준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정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5년 단임제가 더 문제라고 보는 건 대통령 임기는 5년 홀수고 국회는 4년, 지자체장과 지방의회도 임기가 4년이니 엇박자가 나서 어떤 해는 선거를 두 개를 치러야 한다. 이 선거를 정렬을 해서 맞출 필요가 있다. 선거 치를 때마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걸 봐도 선거는 체계화,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할 거냐, 다음 대통령 임기 6개월만 포기하면 된다. 2023년 3월 임기를 시작하는 것을 6개월 앞당겨 2022년으로 하면 지방선거와 한해에 같이 대선을 치르게 된다. 그 다음부터 중간에 총선이 들어가 중간평가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선거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된다. 그래서 누가 다음 대선주자가 되든 이런 것을 고려할 필요 있다. 이런 내용을 책에 담고 있다.”


▷1987년 개헌 땐 그 필요성에 대해 전국민적인 열망과 에너지가 있었다. 과연 지금 그런 국민적 결집이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다.

“그 인식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도 처음엔 개헌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논의에 불이 붙을 조짐이 보인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개헌 모델은 이런 것’이라는 의견은 제시해놔야겠다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는 제왕적 의회를 만들 가능성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 시간관계상 내가 이야기를 다 안해서 그렇지 정말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에 동의할 수 없다.”


▷양극화 문제와 관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더불어성장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공정성장론을 주장하는데 동의하는가.

“그 내용을 뜯어보면 나와 문제 의식은 100% 일치한다. 앞에서 이야기 한 다음 대선 화두와 시대정신은 그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법을 추구하느냐는 내용이다. 다 동의한다. 다만 과연 이분들이 제시한 방안과 관련, 이를 실현할 충분한 재원과 시스템, 정책 환경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대선을 앞둔 화두 선점 차원에서 나온 정책 접근법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논의해 볼 필요는 있다. 문제의식이나 해법을 위한 노력은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우리나라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조선산업 뿐만 아니라 철강,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다 위기다. 이게 수출을 이끈 주력 1등상품이고 전세계 1위권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산업들이 어떤 각도에서 보면 다 흔들린다. 철강은 덤핑이 등장하며 굉장한 위기 국면에 돌입했다. 자동차는 전기자동차와 무인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되는 10년 뒤 우리 자동차 업계가 오늘과 같은 위상을 가질지 심히 우려된다. 반도체는 중국이 투자를 시작했고, 석유화학도 산유국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경제를 이끈 선두주자 품목들이 전부 굉장한 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가 선진 기술을 빨리 습득해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 전략’을 펴면서 그런대로 세계경제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버틴 업종들을 가지고 앞으로 10년 더 이끌 수 있느냐에 대해 깊은 고민과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할 시점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인더스트리 4.0’, ‘4차 산업혁명’, ‘신기술’ 등 화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고려대 기술전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강연하며 세미나도 열고 공부했다. 지난해 가을엔 12개 연좌로 ‘브라운백 세미나’를 했는데 그때 주제들이 대부분 무인차, 전기차, 사물인터넷, 핀테크, 빅데이터, 바이오 신소재, AI로봇 등이었는데, 이런 신기술들이 우리의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냐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다. 지금까진 이게 무엇이냐, 빅데이터가 무엇이냐 했다면 내가 한건 이게 상용화, 실용화 되면 일자리 시장에 얼마나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느냐 였다. 정말 일자리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엄청난 일자리 감소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드디어 20~30년 지나면서 현실화되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이런 신기술을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깊이 들여다보고 우리 일자리 시장에 어떤 변화가 올지 정말 정제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는 강연과 미팅에 가면 정말 솔직하게 젊은이들에게 그런 경고를 한다. 지금 청년 실업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위로 해주고 싶은데 미안하게도 이렇게 밖엔 못한다, 공부하라고 한다. 공부하면 스스로 알게 된다. 지금 첨단 신기술들에 대해 사회적 저항 때문에 다들 상용화를 망설인다. 무인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다. 사회적 공감대만 형성되고 정책적 수용이 되면 바로 수용 가능한 게 지금 수준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 과연 앞으로 여러분들이 10년, 20년 뒤에 이런것들을 여러분의 특기로, 자질로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느냐,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게 바로 정부가 할 일이다. 이 기술에서 뒤처지면 전락한다. 뒤처지면 안 되는데 이걸 수용하면 일자리 시장에 파괴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걸 위한 평생교육, 중·고등, 대학교육을 정부가 나서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지난 10년간 정체라는데 그 이유는 지난 10년간 먹고 산 전통적 의미의 제조업에 대해 조금의 업그레이드도, 새 버전도 마련 못했다. 지금 말한 기술적 발전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 정부의 창조경제에 기대했다. 서울시장 때부터 말한거라 기대했는데 이름은 창조경제인데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접근법을 하고 있다. 대기업 하나와 중소기업을 엮어서 창조경제 센터를 만드는 것은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방법이다. 만약 내가 다음 정권에서 책임지고 운영한다면 창조경제 자체는 맞는 방향이라고 할 것이다. 지난 5년간 선·후진국을 드나들며 제일 가까이서 본 창조경제가 영국이다. 첨단신기술과 문화, 디자인이 융합되면 창조경제가 만들어진다. 융합 과정에서 문화에 비중을 둔게 영국형이다. 신기술에 비중이 가 있으면 이스라엘이나 독일형 창조경제다. 이스라엘과 독일형 창조경제를 해도 좋고, 우리가 문화 쪽에 약하지 않으니 영국형을 해도 좋다. 문화융성이 4대 국정지표에 있는 것 보고 핵심을 짚고 있구나 생각했다. 융합이 되면 저절로 창조경제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진행되는 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요새 화두인 4차 산업혁명과 인더스트리 4.0, 이건 쉽게 풀면 기존의 제조업을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신기술이 혼자 시너지 효과를 내는게 아니라 제조업과 잘 융합되면 시너지가 난다. 다음 단계의 경제 발전을 위한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


▷그동안 여러차례 상속세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시리즈(7월 20일자 A1·5면, 21일자 A5면, 22일자 A8면, ‘흔들리는 경제허리 중견기업’ 참조)를 잘 했던데 적절한 문제제기다. 중소기업, 재벌은 차치하고 몸을 불려야 일자리가 느는데, 기업하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최우선 관심사가 상속이다. 내가 노력해서 기업을 이 정도로 올려놨다, 매출 300억원, 500억원 달성했다라고 한다 그러면 이렇게 벌어서 누구든지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식대에서 기업을 더 키우도록 하는게 욕구인데 현재 상속 시스템을 보면 최고 세율이 50%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다보니 체면 때문에 드러내놓고 얘기를 못해도 기업을 키우고 매출을 늘려서 사람을 고용해야 할 최고경영자 머릿속에 딴 생각이 있다. 기업을 키우는 게 과연 (상속에)도움이 되나라고. 얼마나 무서운 자체 검열인 줄 아는가. 이 순간 발전은 사라진다. 마음 속에 회사를 잘 키우는데가 아니라 잘 물려준다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면 엄청난 사회적 부를 창출하고 경쟁력을 키우는데 장애 사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민의 출발을 했다.

사회와 기업인이 ‘윈-윈’할 수 있다. 기업이 상속세를 낮추자고 얘기하는 정치인은 돌팔매 맞는 분위기다. 때문에 아무도 얘기를 못한다. 문제 있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언론에서 조차도 별로 얘기를 안한다. 정치인들은 더 눈치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적 빅딜을 해보자는 것이다. 창업을 해서 부를 일군 기업이 1세대 지나 2, 3, 4세대까지 가면 기업인도 마음이 많이 바뀐다. 1세대들이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며 부를 쌓는데 에너지를 투입했지만 아래로 가며 명예와 존경심을 주고 싶은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걸 정치권이나 오피니언 리더가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내면 엄청난 부를 사회에 환원시킬 수 있다. 많이 벌어서 푼돈 정도를 문화사업에 대고 어려운 사업 돕는 공헌이 아니라, 즉 사회적 책임(CSR) 아니라 공유가치창출(CSV)을 할 수 있다. 돈을 버는 자체가 건전하고, 상생에 도움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억지로 동반성장을 강요해도 안되는게 현실이다. 아예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기업 경영권을 인정해 주고 기업 수익 창출의 대부분을 사회 간접자본이나 국가적으로 필요한 R&D 투자에 쓰도록 한다든가, 아니면 박물관 도서관 의료기관을 만드는데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산으로 만들 것을 민간분야가 감당하도록 시스템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이상적 사회가 되겠나. 경영권만 갖도록 해주고, 내 부를 가족에 물려주는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해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결코 쉬운 빅딜은 아니다.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이 대표적이다. 여기는 (오너가)경영권 외에 아무것도 없다. 부의 85% 정도를 국가를 위해서 쓴다. 쉬운 게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내 본 것이다. 이를 위한 실행 방안의 하나로 상속세와 기업 의결권 제도 개선을 하자는 것이다.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려면 재산의 상당부분을 상속세로 내야 하는데, 경영권 행사가 어려울 수 있어 (상속세를 적게 내려고)편법을 동원되는 게 현실이다.”


▷야당에선 법인세율을 올리자고 한다.

“부자들도 어렵게 돈을 벌었다. 길거리에서 주운 돈이 아니다. 그런데 부자가 죄인인 것처럼 부자세를 내라한다. 법인세를 더 걷는다는 것도 비슷한 발상이다. 마치 로빈후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정의구현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건 굉장히 명쾌하지만 부자들에게 거부감으ㅏㄹ 주는 방법이다. 부자들은 열심히 뛰며 돈을 벌었다. 불법으로만 돈을 번게 아니지 않느냐. 국민들로부터 진심 어린 존경을 받을 수 있게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서 부를 사회에 환원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사회적 빅딜이 나오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서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준다면 돈을 잘 쓰면서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진정한 성공의 가치를 새롭게 설정해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야당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다.

“언젠가는 보편적 복지를 해야하겠지만…. 국민 전체가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반복되는 얘기지만 재원이 되느냐, 시스템이 돼 있느냐, 정책환경이 돼 있느냐는 것이다. 요즘 기본소득을 얘기하는데, 한국경제신문을 보면 김정호 수석논설위원이 아주 핵심을 꿰뚫는 칼럼(7월21일자 A38면 ‘기본소득 논의하자며 왜곡부터 해서야…)을 썼다. 지금 핀란드와 스위스 등 1인당 연 소득 7만달러 언저리의 강소국들, 정말 강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들이 기본소득 개념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실험을 했다. 지금 우리 야당이,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것과 상황이 다르다. 그 나라들은 담세율이 40%, 즉 소득 절반 가량을 세금으로 걷어서 국민들이 필요한 모든 걸 복지로 해결한다. 그래서 복지 조직이 너무 비대해졌다. 낭비 요소를 줄이기 위해 차라리 모든 복지를 없애고 현금으로 100만원, 300만원 주고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각종 명목으로 복지를 혜택을 주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돈이 가고 행정비용 누수가 있어 차라리 돈을 나눠주는 게 현명하다는, 그런 관점이 모색될 정도로 보편적 복지는 문제점이 있다.

나의 복지관은 첫번째, 현 단계에서 대한민국이 감당 가능한 재원으로 해야 한다. 앞으로 10년간은 통하는 얘기일 것이다. 그 이후엔 보편적으로 가도 좋다. 두번째는 취약계층 일수록 많이 지원하는 ‘하후상박’ 원칙이다. 세번째는 노동의욕을 감퇴하는 현금 분배형 복지는 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서비스 복지 체제를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만 지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386세대가 먹고 사는 문제 말고 이념에 치우쳤으며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이 마지막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시점에 접어들고 있다. 참 중요한 연령이다. 루소가 그랬다. 지식은 절대로 경험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고…. 풍부한 사회 경험을 해 온 50대들의 알토란 같은 경험, 이것이 다음 단계의 대한민국호를 발전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다. 그 연령대의 경험을 어떻게 에너지화 할 것이냐 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 세대에 어떤 ‘인사이트’를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 지난 4년 동안 여러 선·후진국을 가봤다. 르완다·페루 등 아프리카와 중남미를 다녀와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생각이다. 그 연령대가 해외에 많이 나가면 좋겠다. 산업화 경험을 가진 세대가 후진국으로, 개발도상국으로 가면, 처음에는 엄두 안 나지만 나가면 엄청난 기회가 널렸다. 그걸 잘 몰라서 그런 기회를 우리 것으로 못 만든다.

페루에 가서 돌아올때 쯤 한국 엔지니어링 회사 관계자가 찾아왔다. 페루 리막강 수자원 관련 공사 입찰을 하겠다고 왔다. 입찰 제안서를 보니 한강 르네상스를 바꾼 것이었다. 우리는 수량이 풍부한데 페루는 건천이다. 그래서 뭘 느꼈느냐, 나같이 공공영역에 자문하러 온 사람이 개도국에 가 3년 되면 말도 되기 시작하고 이해가 된다. 젊은 사람보다 빨리 돈줄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눈엔 보인다. 이게 산업화를 경험했던 밑천, 자산이다. 그런데 중남미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보면 삼성, LG 정도 빼면 전멸이다. 중남미 인구가 6억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육박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80년대 한창 산업화, 도시화가 되면서 소비가 늘어나는 단계다. 그 황금시장을 대기업만 접근하고 있다. 말이 안 통하고, 그 나라를 잘 모르고, 심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그렇다. 그러니 우리 중소기업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 ‘레드오션’에서 경쟁한다. 그 좋은 중남미 시장에선 미국, 스페인 기업을 무시못한다. 그 지역 선발 개도국인 브라질, 멕시코, 칠레와 일본, 중국이 들어가서 먹고, 한국은 아주 미약하다. 한국의 황금 인력이 오래 지내면 그 나라 실정이 보인다. 그러면 한국 중소기업 몇 개와 계약을 맺고 복수 기업의 고문이 될 수 있다.

중남미 인프라가 엄청나게 크다. 그걸 하나도 못 먹는 걸 보면 피눈물이 난다. 그런 대륙이 아직 많다. 중남미 말고 아프리카도 앞으로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 그걸 중국, 일본이 다 먹고 있다. 우리 50대는 국내에서 북한산이나 청계산에 오르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 정부가 유도해서 정보를 주고 교육을 하면 엄청난 인력이 개도국으로 가서 5년, 10년 지나면 활용할 방법이 많이 있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해외에 나가 보면 국내보다 훨씬 가능성이 크다. 젊은이들도 용기를 가지고 나가라고 하고 싶다.”


▷새누리당 계파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8월9일)전당대회가 끝나면 새 리더십이 잘 해줄 거라 믿는다. 어떻게 정책을 펴면 국민들이 행복해 할까, 국민들의 분노에 가까운 좌절감을 어떻게 해결할까를 놓고 싸우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박수 쳐주는 갈등이다. 그게 아니라 자기 정파 이익, 입지 이런 걸 놓고 패거리 지어서 싸우는데 대해 실망하고 준엄하게 질타한 게 지난 총선 아니냐. 그렇다면 다음 리더십은 건전한 정책 갈등으로 당내 분열된 에너지를 모으는 리더십이 돼야 한다.”


▷새누리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힘들다. 지금 같아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지금처럼 ‘시리즈’로 실망 시키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선을 치르겠나. 심히 걱정되는 상황이다. 새로 선출되는 당 대표에게 기대 걸 수 밖에 없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굉장히 기대감을 갖고 보고 있다. 나는 경험을 중시한다. 시정(서울시장)을 해보니 정말 소중한 시행착오 기간이었다. 그렇게 볼 때 반 총장은 국익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많은 경험 했다. 지난 10년간 사무총장 임기를 두 번 거치면서 엄청난 경험을 쌓았다. 범인들이 가지지 못한 값진 경험이 정책 노하우로 승화된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정책 역량이 될 수 있을까 해서 굉장히 기대를 갖고 있다.”


▷사드(THAAD·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는 어떻게 보나.

“독립적 자주국가가 수시로 미사일을 쏴대고 핵실험을 하는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사드와 같은 방어무기 체계를 도입하는 자체에 반론을 제기한다는 게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국회 현안질의 하는 것을 보니 배치 과정을 문제 삼더라. 야당과 미리 협의를 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었어야 한다는 접근이던데 일리가 없진 않다. 그러나 집권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극도의 보안을 요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새 무기체계 도입을 모두 터놓는다면 논의 단계서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야당 행태라면 상상 이상의 저항에 부딪힐 텐데 아무리 소통을 잘 하는 정권이라도 야당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여소야대’여서 소통 안할 순 없을 것이다. 야당 최고수뇌부와 의논하면서 간절히 보안 유지 부탁하고 속 마음을 터놓고 논의하는 과정은 실험적으로라도 한번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좀 달라졌을까, 충분히 도움을 요청하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은 좀 해봤다.”


▷사드와 관련, 중국 반발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사드의 본질은 외교다. 모양상으로는 안보·국방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혹은 미·중관계와 관련이 있는 외교다. 솔직히 중국에 할만큼 했다고 본다. 지난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베이징 행사장에 가서 앉은 것을 보고 심정이 편치만은 않았다. 성공적 외교라는 보도를 보면서 그렇게 평가할만한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른바 ‘망루외교’라고 이름 붙여졌다. 그 모습을 보는 속내가 굉장히 복잡했다. 필요하니까 갔겠지만….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도와줬다. 두 가지 예만 들었는데 이건 다 미국 입장에선 속이 편치 않은 외교 행보였다. 그럼에도 한국이 중국을 도왔다. 그 이후 중국 정부 모습이 좀 달라진 것 같긴 하다. 옛날에 비해 북한에 대해 무조건 혈맹, 우방이라고 했던데 비해 달라진 것 같아도 우리에게 돌아온 실익은 없다.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보면 우리 정부가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그럴 때 사드 배치가 미·중관계 있어서 하나의 메시지다. 이걸 가지고 대통령이, 정부가 소상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건 언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에게 100% 소상한 설명을 하는 게 현명한가, 이걸 마음 속에 갖고 있는게 현명한가라고 고민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사드 배치 문제는 국방이나 안보 형식을 띠고 있지만 고도의 외교적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부 야당이 자기들과 미리 의논하지 않아 절차적으로 미흡하다고 하는게 과연 바람직한 비판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북핵 문제 해법은.

“지금 스탠스가 옳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우리와 다르다. 정책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같이 5년에 한 번씩 결정권자가 바뀌는 상황에서 과연 큰 틀의 정책 일관성은 뭘로 유지할 수 있나. 정권의 핵심적 대북관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걸 단절적으로 보지 말고 길게 관찰, 평가하고 과거 정책을 다음 정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지 조금 도와준다고 해서 좋은 정권, 통일 정권이고 안 도와주면 보수라고 공격을 주고 받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는 자세가 아니다. 적어도 정당간에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외교 안보 국방 학자들은 긴 틀에서 보는 글도 나올 법하다. 너무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정치인처럼 의견 내는 학자들이 줄었으면 좋겠다.”


▷새누리당 내 대선 지지율 1위 나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릴 처지는 아닌 것 같다. 하여튼 그런 모습을 보며 굉장히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오세훈 개인의 기대라기보다는 국회를 경험하고 서울시장을 두 번에 걸쳐 역임했던 한 인적자원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기대감이 섞인 지지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큰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의원 특권 내려놓기 바람이 불고 있다.

“의원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지원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신분상의 보장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국민적인 동질감, 통합된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데 역행한다. 신분상의 특권과 왕권 시대에 생겨난 신분보장 제도인 면책·불체포 특권 등은 어느정도 (그런것이 필요로 했던) 사회단계는 지나왔다. 공무원 신분 보장도 철밥그릇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런 것도 손을 봐야 한다. 큰 틀에서 한 번 사회적 대 논의를 거쳐 근대화 시절의 역사적 배경을 지닌 제도들을 손 봐야한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를 하자면.

“많은 분들이 소통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그분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이유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원칙을 지켜나가는 강한 리더십을 바란 것 아닌가. 그런데 이게 양날의 칼이다. 원칙 있는 강한 리더십이 소통 부족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모든 품성이나 리더십 유형은 동전의 양면 같다. 원칙을 지켜가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좀 유연한 소통이 보강 돼 단점조차도 단점으로 머물지 않고 장점이 되는 리더십이 되길 바랐는데, 국민들의 평가가 높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산업화의 씨앗을 뿌리고 경제적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룬 맹아가 싹터서 그 공이 박 대통령에게 가야한다. 그 시절 배태됐던 경쟁을 통한 경쟁력, 그걸 만들기 위해 많은 걸 희생했는데 그중 하나가 지역 격차다. 사회 양극화 단초도 됐다. 그래서 이번 정부 초에 바랐던 것은 바로 그것을 2세 대통령 시절에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라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높은 점수를 주긴 쉽지 않다. 1년 이상 남았으니 남은 기간에다로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홍영식 선임기자/박상익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