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미국 대선주자들, 대공황 교훈 잊으셨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공황 시작은 1929년 주가대폭락 아닌
관세 최대 400% 올린 이듬해 스무트-홀리법 탓
무역협정 뒤집겠다는 데 보호무역으로 흥한 나라 없어
경제 공부 하시길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관세 최대 400% 올린 이듬해 스무트-홀리법 탓
무역협정 뒤집겠다는 데 보호무역으로 흥한 나라 없어
경제 공부 하시길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페리스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이라는 영화가 있다. 30년 전 영화다. 고등학생들의 일탈을 그린 영화인데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경제학자인 벤 스타인이 카메오로 등장해 즉흥 경제 강의를 한다. 그의 능청스런 연기는 미국 영화팬들이 손꼽는 명장면이다.
스타인은 포드와 닉슨, 공화당 출신 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를 지낸 인물이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 선거 때면 언론의 인터뷰 신청이 쇄도한다. 공화당 입장에서 풀어내는 노장의 판세 분석은 제법 인기 있다. 그런 그가 요즘 인터뷰에서는 공화당 후보를 코치하기보다 ‘페리스의 해방’에서의 강의 내용을 먼저 꺼내든다.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다. 세계를 대공황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바로 그 악법이다. 도널드 트럼프 탓이다.
대공황이라면 흔히 1929년 10월29일의 주가 대폭락을 떠올린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다우지수는 이듬해 봄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고 투자와 소비 지표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그해 5월 ‘공황 종료’를 선언했겠는가. 하지만 한 달 뒤다. 스무트-홀리법으로 모든 게 망가지고 말았다.
스무트-홀리법의 출발 역시 ‘표심’이었다. 농산물 관세를 대폭 올려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후버의 대선 공약을 상원의 리드 스무트와 하원의 윌리스 홀리가 뒷받침한 법이다. ‘미국의 산업을 장려하고 일자리를 보호하는 한편 정부 세수를 늘린다’는 명분이었다. 포퓰리즘에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까지 동조했고 압도적 찬성으로 상하 양원을 통과했다.
반대도 거셌다. 1000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후버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산업계 거물 헨리 포드는 백악관을 찾아 대통령을 설득했다. 후버의 멘토였던 토머스 라몬트 JP모간 회장은 무릎을 꿇어가며 읍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버는 막무가내였다. 2만여개 품목의 관세율을 평균 59%, 최고 400%로 인상했다.
수입이 급감했다. 1929년 44억달러에서 1933년 15억달러로 감소했다. 다른 나라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20여개 나라가 일제히 보복 관세를 가해 왔다. 수출도 멀쩡할 리 없었다. 52억달러에서 21억달러로 줄었다. 면화 담배 등의 수출이 급감하면서 법의 혜택을 받아야 할 농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 7.8%였던 실업률은 25.1%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에 빠져 블록화되면서 교역량이 3분의 1로 줄었다. 경제사가 존 스틸 고든은 대공황은 1929년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1930년 6월17일 스무트-홀리법에서 시작됐다고 단언한다.
안타까운 건 86년 전의 그 실수가 지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모든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겠다며 보호무역의 기치를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도 일자리 없애는 무역협정을 뜯어고치겠다고 박자를 맞췄다. 스타인은 클린턴이 맞장구를 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민주당을 찍을 뻔했다면서 후보들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개탄했다.
시카고대가 2014년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대다수가 “무역협정이 미국 국민에게 혜택을 가져왔다”고 답했다.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답은 하나도 없었다.
혹자는 미국 등 선진국은 보호무역으로 흥했다며 소위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용어를 들먹인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19세기 미국의 고율 관세는 산업 보호 차원이 아니라 남북전쟁 비용 조달 차원이었다. 영국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보호무역으로 흥한 나라는 없다.
대공황 직전 미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4%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 난리였다. 지금은 15%다. 보호무역주의가 미국과 세계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 가늠조차 어렵다. 마침 세계적인 불경기다.
후버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트럼프, 클린턴, 누가 후버와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세계 경제가 망가지고 나면 누가 책임지나. 경제 공부 좀 하시길 바란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스타인은 포드와 닉슨, 공화당 출신 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를 지낸 인물이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 선거 때면 언론의 인터뷰 신청이 쇄도한다. 공화당 입장에서 풀어내는 노장의 판세 분석은 제법 인기 있다. 그런 그가 요즘 인터뷰에서는 공화당 후보를 코치하기보다 ‘페리스의 해방’에서의 강의 내용을 먼저 꺼내든다.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다. 세계를 대공황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바로 그 악법이다. 도널드 트럼프 탓이다.
대공황이라면 흔히 1929년 10월29일의 주가 대폭락을 떠올린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다우지수는 이듬해 봄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고 투자와 소비 지표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그해 5월 ‘공황 종료’를 선언했겠는가. 하지만 한 달 뒤다. 스무트-홀리법으로 모든 게 망가지고 말았다.
스무트-홀리법의 출발 역시 ‘표심’이었다. 농산물 관세를 대폭 올려 농민을 보호하겠다는 후버의 대선 공약을 상원의 리드 스무트와 하원의 윌리스 홀리가 뒷받침한 법이다. ‘미국의 산업을 장려하고 일자리를 보호하는 한편 정부 세수를 늘린다’는 명분이었다. 포퓰리즘에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까지 동조했고 압도적 찬성으로 상하 양원을 통과했다.
반대도 거셌다. 1000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후버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산업계 거물 헨리 포드는 백악관을 찾아 대통령을 설득했다. 후버의 멘토였던 토머스 라몬트 JP모간 회장은 무릎을 꿇어가며 읍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버는 막무가내였다. 2만여개 품목의 관세율을 평균 59%, 최고 400%로 인상했다.
수입이 급감했다. 1929년 44억달러에서 1933년 15억달러로 감소했다. 다른 나라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20여개 나라가 일제히 보복 관세를 가해 왔다. 수출도 멀쩡할 리 없었다. 52억달러에서 21억달러로 줄었다. 면화 담배 등의 수출이 급감하면서 법의 혜택을 받아야 할 농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 7.8%였던 실업률은 25.1%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에 빠져 블록화되면서 교역량이 3분의 1로 줄었다. 경제사가 존 스틸 고든은 대공황은 1929년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1930년 6월17일 스무트-홀리법에서 시작됐다고 단언한다.
안타까운 건 86년 전의 그 실수가 지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모든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겠다며 보호무역의 기치를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도 일자리 없애는 무역협정을 뜯어고치겠다고 박자를 맞췄다. 스타인은 클린턴이 맞장구를 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민주당을 찍을 뻔했다면서 후보들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개탄했다.
시카고대가 2014년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대다수가 “무역협정이 미국 국민에게 혜택을 가져왔다”고 답했다.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답은 하나도 없었다.
혹자는 미국 등 선진국은 보호무역으로 흥했다며 소위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용어를 들먹인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19세기 미국의 고율 관세는 산업 보호 차원이 아니라 남북전쟁 비용 조달 차원이었다. 영국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보호무역으로 흥한 나라는 없다.
대공황 직전 미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는 4%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 난리였다. 지금은 15%다. 보호무역주의가 미국과 세계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 가늠조차 어렵다. 마침 세계적인 불경기다.
후버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트럼프, 클린턴, 누가 후버와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세계 경제가 망가지고 나면 누가 책임지나. 경제 공부 좀 하시길 바란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