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상반기 세계 무역 6년만에 최저, 세계 떠도는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악령'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계 71개국 중 4분의 3 수출 감소
한국 수출액 감소폭 전년의 2배로
미국·중국 보호무역 노골화무역보복에 대한
비관세장벽 더 높여
한국 수출액 감소폭 전년의 2배로
미국·중국 보호무역 노골화무역보복에 대한
비관세장벽 더 높여
◆ 상반기 세계 무역액 급감
상반기 세계 무역액이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세계 경기 침체와 디지털 무역 증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무역액이 이례적으로 2년 연속 줄면서 나타난 기현상이다. 한국의 상반기 수출액은 전년보다 감소폭이 두 배로 늘면서 세계 7위로 한 계단 떨어졌다. 22일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 1~6월 전 세계 주요 71개국 간의 무역액은 14조425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감소했다. -8월22일 연합뉴스 ☞ 세계에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지면서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하다. 세계 무역이 움츠러들고 있는 것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도 그랬다. 세계 경제는 과연 일부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져든 것인가.
급감한 세계 무역
WTO에 따르면 세계 무역액은 2014년 17조2760억달러를 정점으로 지난해 상반기 11.7% 급감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 1~6월 세계 주요 71개국 간의 무역액은 14조425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5조2540억달러)보다 5.4% 감소했다. 6년 전인 2010년 상반기 13조3600억달러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세계 무역의 2년 연속 감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일어나지 않은 이례적 현상이다.
세계 무역이 줄어들면서 각국 수출도 급감했다.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국가가 71개국 중 4분의 3에 달했다. 상반기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5.1% 줄어드는 데 그쳐 지난해 상반기(-11.0%)에 비해 감소세가 둔화했지만, 아시아 국가 수출액은 6.5% 감소해 전년 상반기(-6.0%)보다 감소율이 커졌다. 중국의 상반기 수입은 10% 줄었고, 전년에는 증가한 수출도 7.7% 감소세로 전환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인도네시아 수출 감소폭이 -11.3%로 가장 컸고, 말레이시아(-10.2%), 싱가포르(-10.0%), 한국(-9.9%), 대만(-9.1%)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상반기에는 5% 줄어드는 데 그쳤으나, 올 들어서는 감소폭(-9.9%)이 두 배로 확대됐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상반기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3% 감소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낙폭이 가팔랐고, 노르웨이는 22.5% 줄어들면서 2위를 차지했다.
노골화되는 보호주의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월20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 각각 반덤핑 예비관세 111%와 49%를 부과했다.
KOTRA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총 21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품목별로는 철강·금속이 18건, 전기전자 2건, 섬유 1건 등이다. 한국은 지난 7월 말 기준 미국을 비롯한 31개국에서 총 179건의 수입 규제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철강 부문이 가장 많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 공급 과잉 때문에 미국 철강사의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며 “미국 정부가 중국 철강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유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중국도 무역장벽을 더 높이 쌓고 있다. 중국의 대(對)한국 반덤핑 조치는 2000~2008년 46건에서 2009~2015년 8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비관세장벽인 위생 및 검역과 기술장벽 건수는 같은 기간 각각 249건, 507건에서 887건, 681건으로 급증했다.
쇠퇴하는 자유무역과 개방
세계 경제는 ‘자유무역’과 ‘개방’을 통해 성장해 왔다. 1992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었고 1993년 다자간 무역협상인 WTO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됐다. 유럽연합(EU)은 1999년 단일 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했다.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글로벌 개방경제 체제가 한층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09년 남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2016년 영국의 EU 탈퇴(Brexit·브렉시트)는 30년 가까이 지속된 경제통합과 세계화에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1930년 대공황 당시처럼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물결이 힘을 얻고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들더라도(beggar-my-neighbor) 나부터 살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열리는 양상이다.
특히 미국에서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움직임은 세계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외교·군사적으론 고립주의 △경제적으론 보호주의 △사회적으론 반이민 정책을 연일 외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트럼프만큼은 아니지만 TPP를 반대하는 등 역시 보호주의를 내걸고 있다.
WTO는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이 작년 10월 중반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각종 보호무역 조치를 쏟아냈다며 세계 경제의 저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모든 경제위기는 정치위기이기도 하다. 세계의 정치 리더십 복원이 이런 혼돈을 극복하는 데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뜻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상반기 세계 무역액이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세계 경기 침체와 디지털 무역 증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무역액이 이례적으로 2년 연속 줄면서 나타난 기현상이다. 한국의 상반기 수출액은 전년보다 감소폭이 두 배로 늘면서 세계 7위로 한 계단 떨어졌다. 22일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 1~6월 전 세계 주요 71개국 간의 무역액은 14조425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감소했다. -8월22일 연합뉴스 ☞ 세계에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지면서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하다. 세계 무역이 움츠러들고 있는 것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도 그랬다. 세계 경제는 과연 일부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져든 것인가.
급감한 세계 무역
WTO에 따르면 세계 무역액은 2014년 17조2760억달러를 정점으로 지난해 상반기 11.7% 급감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 1~6월 세계 주요 71개국 간의 무역액은 14조425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5조2540억달러)보다 5.4% 감소했다. 6년 전인 2010년 상반기 13조3600억달러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세계 무역의 2년 연속 감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일어나지 않은 이례적 현상이다.
세계 무역이 줄어들면서 각국 수출도 급감했다.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국가가 71개국 중 4분의 3에 달했다. 상반기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5.1% 줄어드는 데 그쳐 지난해 상반기(-11.0%)에 비해 감소세가 둔화했지만, 아시아 국가 수출액은 6.5% 감소해 전년 상반기(-6.0%)보다 감소율이 커졌다. 중국의 상반기 수입은 10% 줄었고, 전년에는 증가한 수출도 7.7% 감소세로 전환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인도네시아 수출 감소폭이 -11.3%로 가장 컸고, 말레이시아(-10.2%), 싱가포르(-10.0%), 한국(-9.9%), 대만(-9.1%)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상반기에는 5% 줄어드는 데 그쳤으나, 올 들어서는 감소폭(-9.9%)이 두 배로 확대됐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상반기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3% 감소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낙폭이 가팔랐고, 노르웨이는 22.5% 줄어들면서 2위를 차지했다.
노골화되는 보호주의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월20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 각각 반덤핑 예비관세 111%와 49%를 부과했다.
KOTRA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총 21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품목별로는 철강·금속이 18건, 전기전자 2건, 섬유 1건 등이다. 한국은 지난 7월 말 기준 미국을 비롯한 31개국에서 총 179건의 수입 규제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철강 부문이 가장 많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 공급 과잉 때문에 미국 철강사의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며 “미국 정부가 중국 철강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유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중국도 무역장벽을 더 높이 쌓고 있다. 중국의 대(對)한국 반덤핑 조치는 2000~2008년 46건에서 2009~2015년 8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비관세장벽인 위생 및 검역과 기술장벽 건수는 같은 기간 각각 249건, 507건에서 887건, 681건으로 급증했다.
쇠퇴하는 자유무역과 개방
세계 경제는 ‘자유무역’과 ‘개방’을 통해 성장해 왔다. 1992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었고 1993년 다자간 무역협상인 WTO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됐다. 유럽연합(EU)은 1999년 단일 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했다.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글로벌 개방경제 체제가 한층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09년 남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2016년 영국의 EU 탈퇴(Brexit·브렉시트)는 30년 가까이 지속된 경제통합과 세계화에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1930년 대공황 당시처럼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물결이 힘을 얻고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들더라도(beggar-my-neighbor) 나부터 살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열리는 양상이다.
특히 미국에서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움직임은 세계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외교·군사적으론 고립주의 △경제적으론 보호주의 △사회적으론 반이민 정책을 연일 외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트럼프만큼은 아니지만 TPP를 반대하는 등 역시 보호주의를 내걸고 있다.
WTO는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이 작년 10월 중반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각종 보호무역 조치를 쏟아냈다며 세계 경제의 저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모든 경제위기는 정치위기이기도 하다. 세계의 정치 리더십 복원이 이런 혼돈을 극복하는 데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뜻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