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배치표 30년 변천사①] 문·이과 1위 서울대 법대→경영, 서울대 물리→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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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배치표 자료 분석
사회변화 반영된 대입 커트라인
한경닷컴·종로학원하늘교육 공동기획
사회변화 반영된 대입 커트라인
한경닷컴·종로학원하늘교육 공동기획
[ 김봉구 기자 ] 2015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의 학교 및 학과별 합격가능 예상점수, 즉 ‘대입배치표’ 최상단은 서울대 경영대학(인문계)과 서울대 의예과(자연계)가 차지했다. 30년 전에는 달랐다. 인문계는 서울대 법학과, 자연계는 서울대 물리학과가 1위에 올랐다.
대입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25일부터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가 시작됐다. 다음 달에는 대학별 수시전형이 진행된다. 한경닷컴은 대입 시즌을 맞아 종로학원하늘교육과 공동으로 [대입배치표 30년 변천사] 기획을 마련했다. 입시 자료의 시계열적 흐름을 추출해 그 의미와 맥락을 짚어보자는 취지다.
분석 대상은 1985학년도부터 2015학년도까지 30년 동안의 종로학원 대입배치표다. 배치표는 수험생들이 응시하는 모의고사 결과와 지원 희망대학 등을 토대로 종로학원이 작성한 것이다. 실제 입학성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직접 입학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신빙성 높은 자료라고 봤다.
대입 커트라인은 해당 학과의 전년도 경쟁률과 입학성적에 따른 상·하향 지원, 눈치작전 등 돌발 변수가 개입된다. 그래서 1년 전후로 납득이 어려운 등락도 있는 편이다. 때문에 한경닷컴은 5년 단위로 배치표상 상위 20개 학과를 들여다봤다. 대입과 사회·경제적 흐름의 상관관계 및 변화 추이를 살피기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 '뜨고 진 학과들'이 던지는 메시지
학력고사 시절부터 최근의 수능 세대까지 관통하는 메시지는 뚜렷했다. ‘입시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배치표상 커트라인(4년제 종합대·정시 기준)이 높은 인문계·자연계 학과 20개씩의 면면을 확인하면 당대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1985~1990학년도 배치표는 서울대 일색이었다. 인문계는 20개 모두, 자연계는 연세대 의예과를 제외하면 모두 서울대 학과들이었다. 오랫동안 진로진학을 담당한 신동원 휘문고 교장은 “무조건 배치표 보고 점수에 맞춰 지원하던 시절이었다. 서울대 합격생이 몇 명인지로 평가받는 관행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금과는 분위기 차이가 확연했다. 이금수 EBS 진로진학 담당 전속교사(중대부고 교사)는 “학과보다 서울대란 타이틀이 더 중요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교사도 “경기 호황에 대학 진학률도 높지 않아 서울대만 가면 취업 걱정은 없었다. 좋아하는 학문이나 적성에 맞춰 지원하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자연계 1위는 의대가 아닌 서울대 물리학과였다. 상위 20개 명단에 든 전공도 대부분 서울대 공대 학과들이었다. 과학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수인재 수요가 많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김종우 전 수능개선위원회 위원(양재고 교사)은 “정책적으로 공대를 키우고 과학인재를 육성했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인문계 1위였던 서울대 법학과는 줄곧 선두를 지켰다. 변수는 학제 변화였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후 서울대 경영대가 1위로 올라섰다. 한 지방 사립대 교수는 “법학이 공동체와 질서를 지향하는 데 비해 경영학은 개인과 기업을 다룬다. 사회변화와 궤를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30년 전 서울대의 상위 학과 싹쓸이는 일종의 반례(反例)다. 통념처럼 학과 선택의 경향성이 ‘취업’으로 바뀐 게 아니다. 서울대 출신이면 순수학문 전공도 문제없이 취업하던 시대가 저물고, 의대와 명문대 경영학과가 서울대 학벌의 대체재가 됐다는 견해가 보다 설득력 있다.
◆ "문제는 취업" 실용학문 선호 뚜렷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커다란 균열을 냈다. 이를 계기로 입시에서도 취업의 중요성이 전면화 됐다. 대학 졸업 후 고소득 전문직이나 안정적 직장이 보장된 학과의 선호도가 껑충 뛰었다. ‘면허가 있는 학과’가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소재 외고 관계자는 “IMF 위기를 기점으로 실용 학과가 치고 올라왔다. 의·치·한의대를 비롯해 경찰대, 교육대, 약학대 등 진로가 확실한 학과들의 약진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한 입시전문가도 “가장 큰 변별점은 역시 취업이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을 보장 못하는 시점부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2000학년도 배치표를 보자. 상위 20개 명단에서 서울대 공대 학과 상당수가 사라졌다. 빈자리는 의학계열 학과들이 메웠다. 2005학년도부터는 의대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웬만한 지방대 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 공대를 앞지른 시기다. 인문계는 교대, 사범대 강세가 눈에 띄었다. 2005학년도 상위 20곳 중 5개가 교육계열 학과였다.
물론 대입 현상을 사회변화의 한 가지 틀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당연히 입시제도와 대학별 전형 변화가 중요변수로 작용했다. 1994학년도 수능 도입이 큰 변곡점이었다. 2000년대 들어선 특별전형과 무시험전형, 수시전형이 선보였다. 이어 수능 9등급제, 선택형 수능이 시행됐다. 수시 비중은 2017학년도 기준 69.9%까지 치솟았다.
1990년대 중후반 연·고대 상위 학과들의 20위 내 진입(1995학년도 인문계 기준)을 사례로 들 수 있다. 박인호 용인외대부고 3학년부장은 “서울대 입시에서 내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신이 안 좋은 외고 학생들이 내신을 덜 보는 연·고대로 많이 진학했었다”고 부연했다.
30년치 자료를 분석한 종로학원하늘교육의 임성호 대표는 “취업이 학과 선택 기준으로 자리매김한 것과 반비례해 기초학문 홀대는 심각해졌다”며 “단적인 예로 한때 대서특필되던 수학·과학올림피아드 수상도 ‘스펙’이란 이유로 입시에서 배제된다. 이젠 기초과학 인재 육성을 위한 국가적 대책이 나와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 <표>1985~2015학년도 문·이과 커트라인 상위 20개 학과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대입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25일부터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가 시작됐다. 다음 달에는 대학별 수시전형이 진행된다. 한경닷컴은 대입 시즌을 맞아 종로학원하늘교육과 공동으로 [대입배치표 30년 변천사] 기획을 마련했다. 입시 자료의 시계열적 흐름을 추출해 그 의미와 맥락을 짚어보자는 취지다.
분석 대상은 1985학년도부터 2015학년도까지 30년 동안의 종로학원 대입배치표다. 배치표는 수험생들이 응시하는 모의고사 결과와 지원 희망대학 등을 토대로 종로학원이 작성한 것이다. 실제 입학성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직접 입학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신빙성 높은 자료라고 봤다.
대입 커트라인은 해당 학과의 전년도 경쟁률과 입학성적에 따른 상·하향 지원, 눈치작전 등 돌발 변수가 개입된다. 그래서 1년 전후로 납득이 어려운 등락도 있는 편이다. 때문에 한경닷컴은 5년 단위로 배치표상 상위 20개 학과를 들여다봤다. 대입과 사회·경제적 흐름의 상관관계 및 변화 추이를 살피기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 '뜨고 진 학과들'이 던지는 메시지
학력고사 시절부터 최근의 수능 세대까지 관통하는 메시지는 뚜렷했다. ‘입시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배치표상 커트라인(4년제 종합대·정시 기준)이 높은 인문계·자연계 학과 20개씩의 면면을 확인하면 당대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1985~1990학년도 배치표는 서울대 일색이었다. 인문계는 20개 모두, 자연계는 연세대 의예과를 제외하면 모두 서울대 학과들이었다. 오랫동안 진로진학을 담당한 신동원 휘문고 교장은 “무조건 배치표 보고 점수에 맞춰 지원하던 시절이었다. 서울대 합격생이 몇 명인지로 평가받는 관행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금과는 분위기 차이가 확연했다. 이금수 EBS 진로진학 담당 전속교사(중대부고 교사)는 “학과보다 서울대란 타이틀이 더 중요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교사도 “경기 호황에 대학 진학률도 높지 않아 서울대만 가면 취업 걱정은 없었다. 좋아하는 학문이나 적성에 맞춰 지원하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자연계 1위는 의대가 아닌 서울대 물리학과였다. 상위 20개 명단에 든 전공도 대부분 서울대 공대 학과들이었다. 과학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수인재 수요가 많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김종우 전 수능개선위원회 위원(양재고 교사)은 “정책적으로 공대를 키우고 과학인재를 육성했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인문계 1위였던 서울대 법학과는 줄곧 선두를 지켰다. 변수는 학제 변화였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후 서울대 경영대가 1위로 올라섰다. 한 지방 사립대 교수는 “법학이 공동체와 질서를 지향하는 데 비해 경영학은 개인과 기업을 다룬다. 사회변화와 궤를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30년 전 서울대의 상위 학과 싹쓸이는 일종의 반례(反例)다. 통념처럼 학과 선택의 경향성이 ‘취업’으로 바뀐 게 아니다. 서울대 출신이면 순수학문 전공도 문제없이 취업하던 시대가 저물고, 의대와 명문대 경영학과가 서울대 학벌의 대체재가 됐다는 견해가 보다 설득력 있다.
◆ "문제는 취업" 실용학문 선호 뚜렷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커다란 균열을 냈다. 이를 계기로 입시에서도 취업의 중요성이 전면화 됐다. 대학 졸업 후 고소득 전문직이나 안정적 직장이 보장된 학과의 선호도가 껑충 뛰었다. ‘면허가 있는 학과’가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소재 외고 관계자는 “IMF 위기를 기점으로 실용 학과가 치고 올라왔다. 의·치·한의대를 비롯해 경찰대, 교육대, 약학대 등 진로가 확실한 학과들의 약진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한 입시전문가도 “가장 큰 변별점은 역시 취업이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을 보장 못하는 시점부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2000학년도 배치표를 보자. 상위 20개 명단에서 서울대 공대 학과 상당수가 사라졌다. 빈자리는 의학계열 학과들이 메웠다. 2005학년도부터는 의대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웬만한 지방대 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 공대를 앞지른 시기다. 인문계는 교대, 사범대 강세가 눈에 띄었다. 2005학년도 상위 20곳 중 5개가 교육계열 학과였다.
물론 대입 현상을 사회변화의 한 가지 틀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당연히 입시제도와 대학별 전형 변화가 중요변수로 작용했다. 1994학년도 수능 도입이 큰 변곡점이었다. 2000년대 들어선 특별전형과 무시험전형, 수시전형이 선보였다. 이어 수능 9등급제, 선택형 수능이 시행됐다. 수시 비중은 2017학년도 기준 69.9%까지 치솟았다.
1990년대 중후반 연·고대 상위 학과들의 20위 내 진입(1995학년도 인문계 기준)을 사례로 들 수 있다. 박인호 용인외대부고 3학년부장은 “서울대 입시에서 내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신이 안 좋은 외고 학생들이 내신을 덜 보는 연·고대로 많이 진학했었다”고 부연했다.
30년치 자료를 분석한 종로학원하늘교육의 임성호 대표는 “취업이 학과 선택 기준으로 자리매김한 것과 반비례해 기초학문 홀대는 심각해졌다”며 “단적인 예로 한때 대서특필되던 수학·과학올림피아드 수상도 ‘스펙’이란 이유로 입시에서 배제된다. 이젠 기초과학 인재 육성을 위한 국가적 대책이 나와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 <표>1985~2015학년도 문·이과 커트라인 상위 20개 학과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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