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물류대란이 빚어지고 있는 데 대해 거친 언어로 대주주 책임을 거론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놀랄 만한 일이다. 추석 연휴 전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업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에 물류대란의 책임이 있다’고 대통령은 작심하고 비판했다.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격앙된 감정도 드러냈다.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의무감의 발로라고 하겠지만 대통령 발언으로는 아주 부적절하다. 기업을 살리려는 정부와 채권단의 선의가 악덕 대주주 때문에 좌절됐다는 인식이라면 심각한 착오다. 한진해운 대주주와 경영진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업황이 곧 좋아질 것’이란 낙관에 휩쓸려 부도를 낸 것은 그 자체로 큰 죄다. 더구나 국가전략자원인 물류인프라를 훼손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한진해운 대주주는 이미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기업은 법원으로 넘어갔고 경영권은 박탈당했다. 그룹 계열사 주가와 신용등급도 일제히 하락했다. 대한항공 등 계열사의 투자와 한진해운의 자구액을 합치면 2조원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2대주주였던 에쓰오일의 지분까지 처분했다.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과 산업은행의 요청을 받고 한진해운을 인수한 조양호 회장이 기업 살리기에 최선을 다한 점은 명백하다.

대통령의 발언은 사회적 책임을 지고 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대주주 측에 돈을 더 내놓으라는 압박으로 비친다. 권한은 없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은 ‘유한책임주의’라는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리와도 맞지 않다. 대주주였던 대한항공도 마찬가지다. 8200억원을 쏟아붓느라 부채비율이 1100%까지 치솟았고 그 대부분을 날리게 됐다. ‘같이 죽어라’는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질타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대통령이 정작 엄하게 추궁해야 할 대상은 무책임한 채권단과 무능한 정부다. 채권단은 2009년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착수한 이래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으로 연 12%가 넘는 고금리 장사를 해 왔다. 채권 회수에만 치중하며 회사를 말려 죽였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지난 5월 자율협약 이후에는 자금 지원도 끊어졌다. 정치적 고려로 4조2000억원이나 쏟아 넣은 대우조선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한진해운 사태를 지켜본 재계에서는 ‘역시 구조조정 때는 최대한 버틴 다음에 마지막에 돈을 넣어야 한다’는 자조가 나오고 있는 정도다.

무엇보다 정부 책임이 크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물류대란에 대한 대비 없이 덜컥 법정관리를 결정한 뒤에도 우왕좌왕하며 피해를 키우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아예 존재감이 없다. 박 대통령의 ‘대주주 책임 발언’은 면피에 치중한 누군가의 잘못된 보고만 받은 탓일 수도 있다. 재벌의 연대책임이라는 것은 정부 정책과도 전혀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