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힐피거 CK 오브제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SK네트웍스가 패션사업을 통째로 현대백화점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5000억원대 연매출을 올리고 있는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최근 빈폴 브랜드의 상징적 매장인 서울 명동점과 강남점 문을 닫았다. LF도 백화점에서 잇따라 매장을 철수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패션사업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와 1990년대 호황을 누렸다. 최대 광고주가 패션업체들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불황과 저가 제조·직매형 의류(SPA)의 공습으로 일제히 사업 축소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 패션사업의 잔혹사가 시작됐다는 말도 나온다.
대기업 '패션사업 잔혹사'…불황 떠밀려 사업 접고 매장 철수
◆오브제·오즈세컨 또 팔리나

SK네트웍스는 20일 패션사업 매각과 관련한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한 관계자는 “양사 간 비밀보장각서 때문에 더 자세한 사항은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SK네트웍스는 패션사업부문에서 지난해 5652억원의 매출을 올린 국내 패션업계 5위 회사다. 업계에서는 정유와 이동통신사업이 주력인 SK네트웍스가 비주력부문을 정리하면서 패션사업을 매각할 것이란 얘기가 꾸준히 나왔다.

지난해 디자이너 브랜드 스티브J&요니P, SJYP를 인수하고 미국 캐주얼 브랜드 아메리칸이글과 이탈리아 명품 남성복 까날리의 국내 판권 계약을 맺는 등 공격적 행보를 보이자 업계에서는 “SK네트웍스가 좀 더 좋은 가격으로 패션부문을 매각하기 위해 사업을 확장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 패션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1990년부터 패션사업을 해온 SK네트웍스마저 사업을 접으면 안 그래도 업황이 안 좋은 패션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현금을 쥐고 있는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 유통업체들이 알짜배기 패션사업을 계속 사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비용·재고부담에 ‘허덕’

대기업 '패션사업 잔혹사'…불황 떠밀려 사업 접고 매장 철수
국내 대기업들의 패션사업이 고전하는 이유로는 무리한 매장 확대와 재고 부담, 고비용 구조 등이 꼽힌다. 가두점 및 백화점 매장에 들어가는 비용, 인기 높은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데 들어가는 돈, 정가에 안 팔린 옷을 싸게라도 팔아야 하는 구조 등이 이익률을 낮추는 요소다. 삼성물산이 지난 7월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와 여성 잡화 브랜드 라베노바, 빈폴키즈 사업을 접은 것도 비용 절감 차원에서다. 회사 측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 등에 주력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LF 역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매장을 줄여왔다. 지난해에는 여성복 모그의 백화점 매장을 축소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는 질바이질스튜어트, 일꼬르소도 백화점에서 뺐다. 비용이 덜 드는 온라인 유통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다. 편집숍 어라운드더코너 매장도 세 곳만 남기고 모두 철수하며 온라인몰 강화로 방향을 돌렸다.

국내 의류시장의 성장세는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류시장 규모는 32조7000억원이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평균 5.1%이던 연간 성장률이 2014년 2.4%에서 2015년에는 1.6%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상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패션업계는 고가 명품과 저가 SPA만 성장하는 구조”라며 “기존 국내 브랜드들은 백화점 매장 위주로 운영하고 중간 가격대를 책정한 점, 늘어나는 해외 직구(직접구입) 등으로 계속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통 공룡들 공세에 밀리나

대기업들이 패션사업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유통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패션사업부문으로 출발한 신세계인터내셔날(SI)은 톰보이를 인수해 지난해 860억원의 매출을 내는 브랜드로 성장시켰고 최근에는 브이라운지 등 신규 브랜드도 선보였다. 현대백화점은 2012년 한섬을 인수한 데 이어 SK네트웍스 패션부문까지 사들이려고 물밑 작업 중이다. 한섬을 인수한 현대백화점이 SK네트웍스 패션부문까지 품에 안는다면 1위 삼성물산 패션부문, 2위 LF에 이어 3위 패션기업으로 올라서게 된다.

한 패션 대기업 관계자는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지에 따라 패션업계 순위가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지혜/이수빈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