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현금 없는 경제?
‘현금 없는 경제’가 주목받고 있다. 지폐를 전자화폐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 일부 국가는 일정 금액 이상의 현금 거래를 법으로 금지하고, 한국은행도 동전 없는 사회를 계획하고 있다.

신용카드, 스마트폰, 삼성페이 등 전자화폐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 흥미롭다. 흔히 듣는 게 지폐의 폐지를 통해 돈세탁, 테러, 뇌물수수, 조세회피와 같은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금이 사라지면 그런 범죄가 소멸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소수의 불미스런 사람들 때문에 대부분 무고한 시민을 국가 감시망에 가둬 둔다는 건 알코올을 잘못 다루는 사람들 때문에 음주를 금지하는 것만큼이나 소름 끼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범죄와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현금 없는 경제의 옹호론이다. 불황 극복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금융회사의 중앙은행 예치금에만 적용했던 마이너스 금리를 은행 계좌에도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 마이너스 금리란 예금자가 은행에 사실상 보관료를 지급하는 금리제도다. 그런 통화정책은 대량 현금 인출사태를 야기한다. 독일 재보험사 뮌헨리, 코메르츠방크를 비롯한 은행들이 유럽중앙은행에서 각각 수천만 유로를 인출해 현금으로 보관하듯이 유럽 금융회사의 ‘유럽중앙은행 탈출’이 입증한다.

현금 금지 지지자들이 그런 인출사태를 모를 리 없다.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인출사태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그런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려면 현금 사용을 제한·금지해야 한다는 게 현금 없는 사회의 옹호 논리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최대 걸림돌은 지폐”라며 “지폐 탓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 정책은 절름발이였다”는 미국의 유명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리처드 로고프의 지적은 종이돈 폐지의 논리를 잘 말해준다.

현금 없는 경제는 저축을 악이라고 믿는 케인스주의가 지배한다. 그런 경제가 과연 인간들의 평화롭고 생산적인 협력을 가능케 하는가는 초미의 관심거리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마이너스 금리는 지적 사고(思考)의 치명적 오류일 뿐만 아니라 번영에도 치명타를 준다. 시장경제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그런 통화정책은 저축과 투자를 위축시키고 그래서 현금 없는 사회는 빈곤과 실업이 남는다.

중앙은행이 독점하고 있는 지폐는 매우 불완전하지만 지금까지는 국가권력의 무제한 확장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금이 없어지면 국가는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포괄적으로 통제할 무제한 권력을 갖는다. 은행들이 국가에 예속돼 있기에 국가는 기업과 개인의 금융 거래를 속속들이 미행할 수 있다. 시민들의 사적 비밀이 상실되고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을 건 불 보듯 뻔하다.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면 두 가지를 모두 잃게 된다. 조세와 정부 개입이 가혹하면 현금 거래의 익명이 보장되는 암시장으로 도피할 수 있어서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가 부분적으로 제한될 수 있지만 현금 거래가 금지되면 그런 제한마저도 풀린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가 위태로워진다.

지폐를 발행하고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비용이 막대하다고 해도 이게 현금 폐지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전자화폐가 편리해 종이돈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믿고, 그 폐지를 쉽게 용납하거나 요구하는 건 자유를 포기하는 아주 순박한 행동이다. 금태환의 의무도 없고 중앙은행의 화폐 독점을 제한하는 어떤 장치도 없는 터에 현금마저 철폐하는 건 노예의 길이다.

현금 없는 사회는 예금자들의 재산을 몰수해 정부와 금융회사끼리 나눠먹는 사회라는 것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은행들의 중앙은행 예치금 보관료(마이너스 금리)를 은행 고객들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런 전가의 회피는 불가하다. 결론적으로 현금 없는 경제는 포기하는 게 옳다. 중앙은행의 독점적 권력을 제한해 경제적 자유를 확대·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사회야말로 누구나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