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에 집중 IBM, 공급사와 혁신 공유한 P&G '복잡성의 덫' 탈출
2012년 2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도요타의 초성장과 복잡성의 덫(Toyota’s Hyper Growth and Complexity Trap)’이란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일본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복잡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도요타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독특한 생산 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급속한 세계화는 도요타의 해외 생산 공장을 2배로 늘렸고, 제품군도 70여개 확대됐다. 또 공정이 복잡해지면서 손실이 늘어나고 수익성이 줄어들면서 복잡성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도요타의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도요타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기업의 활동 무대는 세계가 됐고, 이로 인해 공급 사슬도 글로벌화됐다. 한국 기업들도 21세기 들어오면서 해외 공장을 설립하고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등 공급 사슬을 확장해왔다. 이런 공급 사슬의 글로벌화는 기업의 수익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지만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결과도 낳았다. 이런 와중에 한국 기업들의 복잡성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 경영활동을 하는 기업들은 높은 수준의 복잡성을 겪고 있으며, 복잡성 증가는 지정학적 위치와 관계없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증가율에서는 지역, 경제발전 정도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국의 복잡성 증가율은 68%로 세계에서 이탈리아,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순위며, 국가별 복잡성 증가율을 고려할 때 국내 기업은 다른 국가의 기업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복잡성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의 한진해운 사태는 한진해운만의 문제가 아니라 화주인 삼성전자 및 국내 중소기업들의 물품에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이른바 글로벌 공급체인과 관련한 복잡성이 발생했다. 이런 복잡성은 해운회사가 가지는 공급망 범위의 확대에 따른 공급망 구조의 복잡성이 증가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생산 효율이 20% 감소했다. 이 역시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의 종류가 늘어남에 따라 회사의 복잡성이 증가, 생산성이 떨어진 사례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역시 이를 대외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춰봤을 때 기업의 복잡성을 진단하는 것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컨설팅업체 윌슨페루멀의 스티븐 윌슨은 ‘복잡성 큐브’를, 엔터프라이즈그룹 설립자 존 마리오티는 ‘복잡성 지수’를 개발해 복잡성 진단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복잡성 큐브와 복잡성 지수는 모두 한계가 있다. 복잡성 큐브는 복잡성 요인들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정립에 필요한 데이터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 정보들은 대부분 내부 정보로, 이런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면 신뢰성 있는 측정값을 도출하기 어렵다. 따라서 범용적 측정모델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복잡성 지수는 산업별 특성이 반영된 모델로 평가할 수 있으나, 이 역시 복잡성 요인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설정과 신뢰성 있는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돼 국내 기업의 복잡성을 측정하는 데 무리가 있다.

이처럼 복잡성을 야기할 수 있는 기업의 요인들은 정성적인 요인이 많아 측정하기 어려울 뿐더러 그 요인을 파악하는 것조차 한계가 있다. 즉 통계적으로 이를 분석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기에 세계적으로 복잡성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은 강조하고 있지만 그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분석 방법론은 전무한 상태다. 필자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과 서울대 생산관리연구실의 연구원들과 함께 한국 기업과 산업 수준에 맞는 복잡성을 진단할 수 있는 방안을 지난 2년간 연구해 왔으며 곧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해외의 복잡성 극복 사례에서 복잡성 측정 요인을 추출하는 방식을 취했다.

필자가 연구에 참고한 해외의 복잡성 극복 사례 중 IBM을 살펴보자. IBM은 과거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 그 밖의 관련 제품까지 모두 기업 자체 조직을 통해 수행해왔다. 그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생겼다. 시장 내 점유율이 10% 이하로 급격하게 하락하고, 모든 사업 분야에서 경쟁사보다 기술력이 뒤처지게 됐으며, 매출 대비 많은 비용 지출로 1992년도에는 50억달러의 대규모 순손실을 기록했다. 즉 수직적 통합으로 조직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복잡성의 덫에 빠진 것이다. 또 P&G 같은 기업은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독자적인 연구 개발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태에 직면했다.

이 두 회사는 어떻게 복잡성을 극복했을까. IBM은 생산라인을 협력사에 의뢰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핵심 역량에만 본사가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하는 전략으로 내부의 복잡성을 감소시켰다. P&G는 독자적인 연구를 위한 본사 연구진을 더 늘리지 않았다. 이는 본사의 복잡성을 가중시키지 않고도 중소 공급업체의 연구진과 아이디어 공유 및 상호 교류를 활발히 하며 제품 혁신을 가능케 했다.

또 세계 최대 아웃소싱 업체인 홍콩의 리&펑(Li&Fung)은 명확히 정의된 제품 및 서비스 표준을 제시하는 방법 등을 통해 복잡성을 줄였다. 개방적인 경영을 통해 신뢰가 기반이 된 공급사슬을 구축해 복잡성을 혼자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인 공급사슬 구성체와 함께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또 공급업체가 너무 많아지거나 지나치게 외부 업체에 의존하면서 야기되는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협력업체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이를 통해 이들 간 긴장과 경쟁 분위기를 유도함으로써 복잡성 문제 해결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복잡성은 더 복잡해지기 전에 진단, 처치해야 한다. 국내 건설산업과 같은 산업군의 경우 큰 복잡성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잡성의 덫은 어느 산업군, 어느 기업에나 찾아올 수 있다. 지금 당장 발밑을 살펴보라. 이미 당신의 기업은 복잡성의 덫에 발을 들여 놓지는 않았는가.

복잡성의 측정과 그 방법

피터 터크먼 슬로베니아 루블리아나대 교수와 미국 DRK리서치의 케빈 매코맥은 2009년 발표한 논문에서 공급사슬의 위험 요소로 불확실성을 꼽았다. 허대식 연세대 교수는 2004년 논문에서 공급사슬 구조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복잡성을 언급했다.

공급사슬이 글로벌화되면 소비자가 많아지고, 많아진 소비자는 다양한 니즈(needs)가 있으므로 기업이 제공해야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수가 늘어난다. 해외에 영업점이나 공장을 설립하는 것도 현지화 등의 복잡성을 야기하며, 글로벌 공급사슬을 위해 많은 회사와 관계를 맺는 데 이 역시 복잡성을 일으킨다.

기존에 개발된 복잡성 진단 모델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스티븐 윌슨이 2013년 발표한 ‘복잡성 큐브’와 존 마리오티의 ‘복잡성 지수’다. 복잡성 큐브란 복잡성의 세 가지 유형을 복잡성 큐브라는 개념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이루는 제품 복잡성, 프로세스 복잡성, 조직 복잡성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리오티는 그의 저서 《복잡성 위험(Complexity Crisis)》에서 복잡성 지수(Complexity Index)를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영업점 수, 공급업체 수, 고객 수, 제품 수, 제품 기능 등이 복잡성과 연관이 있다고 언급했다.

김수욱 < 서울대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