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삼성전자에 선전포고

지난해 삼성물산을 공격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선전포고를 했다. 엘리엇 계열의 펀드 두 곳이 삼성전자에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30조원 규모의 현금배당을 해줄 것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엘리엇 계열의 두 펀드는 지분 0.62%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월가의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가세하면 삼성전자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월6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삼성전자 둘로 쪼개고 30조원 배당하라"
☞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다시 삼성그룹을 공격하고 나섰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그룹을 곤혹스럽게 한 세계적인 헤지펀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한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계획에 반대하고 나서 삼성을 코너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 이번 공격 대상은 삼성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다. 엘리엇이 삼성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을까?

‘삼성전자 쪼개라’는 엘리엇

엘리엇 계열의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터캐피털은 최근 삼성전자 이사회에 △삼성전자를 지주회사(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을 검토할 것 △삼성전자 주주들에게 주당 24만5000원, 총 30조원 규모의 특별 현금배당을 할 것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한국 코스닥시장과 유사한 미국 나스닥시장에도 상장시킬 것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의 이사회에 사외이사 3명을 추가해 기업경영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삼성전자를 쪼개 회사를 둘로 나누고, 회사가 가진 현금 중 30조원을 외국인을 비롯한 주주들에게 나눠주며, 자신들이 추천하는 이사를 선임하라는 얘기다.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터캐피털은 삼성전자 지분 0.62%(76만218주)를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장사 전체 주식의 0.5% 이상만 있으면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제안할 권리(주주제안권)가 있다.

단기 이익이 목표인 ‘주주행동주의자’와 ‘기업사냥꾼’

엘리엇(Elliott)은 미국의 억만장자 폴 싱어라는 사람이 1977년에 설립한 펀드다. 운영자산은 290억달러(약 32조원)로 알려졌다.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나온 싱어는 약점이 있는 기업이나 국가를 사정없이 물고 늘어져 이익을 챙기는 ‘냉혹한 독수리’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해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 계획을 발표하자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갖고 있다”며 합병 반대를 선언했으나 주주총회에서 패배했다.

싱어는 임원 선임이나 교체 등 기업 지배구조에까지 간여하면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 배당금이나 시세차익을 목표로 하는 일반적인 주주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싱어 같은 이들을 ‘주주행동주의자(shareholder activist)’ 또는 ‘기업사냥꾼’이라고 한다. 주주행동주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영진·이사회 교체 △회사가 가진 자산의 배분이나 매각 요구 △회사 매각이나 다른 회사 인수(M&A), 기업분할 요구 등의 수법을 활용한다. 예전에 담배 사업을 하는 KT&G를 공격해 단기에 엄청난 돈을 챙겨 나간 칼 아이칸도 기업사냥꾼이라고 볼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자들은 지속가능한 성장보다는 일부 주주의 단기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도록 경영진에 압력을 넣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반면 기업 경영진의 독단이나 횡포를 견제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경계 분위기 강한 삼성

국내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에 명분을 주면서 자신들은 실속을 챙기겠다는 전략”이라는 평가가 많다. 삼성전자 분할, 삼성물산과의 합병 등이 삼성그룹이 그리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식을 0.59%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0.62%)보다도 적다. 지분율을 높여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게 절실하다. 이건희 회장 오너 일가와 삼성 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8.15%인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엇 요구처럼 삼성전자를 둘로 쪼개면 삼성전자가 가진 자사주(12.8%) 지분율만큼 사업회사 지분을 소유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주주 제안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내심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30조원 특별배당, 사외이사 3명 선임 등은 삼성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현금 배당을 늘리면 투자여력이 줄어든다. 사외이사 수를 늘려 헤지펀드 추천 인사 등이 이사회에 들어오면 경영방식이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다.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해줘야”

삼성은 지난해 엘리엣과 싸우는 바람에 한 달 넘게 경영 공백이 생겼다. 예전에도 소버린이라는 헤지펀드가 SK그룹의 경영권을 위협, 1조원을 챙겨 나갔으며 헤르메스라는 펀드도 삼성물산을 공격한 적이 있다. 왜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이 되는 것일까?

한국 기업들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선 허용되는 ‘차등의결권주’ 등을 발행할 수 없다. 차등의결권주는 보통주의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가진 주식으로 경영권 방어의 수단이 된다. 이렇게 투기적인 공격으로부터 취약한데도 정치권은 경영권을 뒤흔들 수도 있는 상법 개정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헤지펀드와 기업사냥꾼들은 국제금융시장의 ‘늑대’와도 같다. 허점이 있으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국내 간판 기업을 국제 투기꾼의 먹이로 내주지 않으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경영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