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직장인 '자아찾기' 열풍…홍대·강남 등에 소모임 잇달아
지난 12일 오후 7시30분 서울 논현동의 서점 겸 카페 ‘북티크’. 정장 차림 직장인 11명이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나는 미안했다’를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연인과 헤어진 이유, 이유 없이 가족에게 화풀이하는 습관 등을 다룬 글들이 나왔다.

한 여성은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는데 나 자신을 몰아붙이기만 했다”며 “스스로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감성서점’이라는 직장인 글쓰기 모임의 모습이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이들은 지난달 28일부터 1주일에 한 번 모임을 연다. 박종원 북티크 대표는 “대다수 직장인이 온종일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작 자기 얘기는 잘 꺼내지 못한다”며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더 진솔하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찾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2030 직장인’을 중심으로 ‘자아 찾기’ 소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느슨한 연결망 속에서 자신의 삶과 진로 등을 고민하고 나누는 모임이다. 서울 홍대 인근과 강남 일대의 카페나 전시·모임 공간 등이 주 무대다. 사교나 특정 취미활동 공유가 주 목적인 기존 동호회와 다르다. 자격증 취득 등이 목표인 스터디 모임도 아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나고 서로 간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게 특징이다.

서울 상수동에는 지난 5월 ‘꿈을 찾는 어른들의 학교’라는 이름의 ‘퇴사학교’가 문을 열었다. 삼성전자를 4년 다니다 퇴사한 장수한 씨(31)가 세운 직장인을 위한 대안교육장이다. 퇴사를 화두로 내걸고 직장 생활의 의미와 평생의 진로 등을 고민하는 강의와 토론이 벌어진다. 5월부터 이 학교의 ‘퇴사학개론’이라는 단과 수업을 들은 수강생이 1000여명에 달한다. 한 공공기관 직원 김모씨는 “회사 생활이 힘든 이유가 내가 이상해서인지, 원래 그런 건지 궁금했다”며 “회사를 그냥 다니기도 퇴사하기도 막막해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모임에 나왔다”고 했다.

이 같은 직장인의 ‘작당’은 곳곳에서 은밀하게 벌어진다. 서울 합정동에 있는 ‘안티카페 손과 얼굴’은 ‘도시 생계인의 상급상족 프로젝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주기적으로 영화상영회와 독서모임을 연다.

이 카페를 연 정혜진·강정아 씨는 “20~30대 도시인이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는 에너지를 키우고 교환하는 장소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