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상태다. 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발언은 그간 정국을 뒤흔들어온 북한인권 결의안 문제, 개헌 문제 등을 모두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말았다. 그럴 만도 하다. 아무런 공식 직책도, 공직 경험도 없는 최씨가 소위 ‘비선실세’ 노릇을 해왔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이 허탈함과 자괴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대통령의 중대한 실수가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씨로부터 제한된 시간과 제한적인 주제 범위 내에서 단순 조언을 받는 정도였다고 하더라도 엄정한 국정 무게를 생각하면 용납되기 어렵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조차 성역 없는 수사는 물론 다소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는 것도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일을 기화로 정국을 공황 상태로 몰아가려는 일각의 시도 또한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마치 무슨 혁명이라도 해야 하는 듯 과격한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특별검사와 국정조사는 물론 대통령 탄핵과 하야 이야기까지 중구난방식으로 제기하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무정부적 헌정 중단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혼란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좀 더 차분하고 대국적으로 이번 일을 수습해나가야 한다. 지금은 일종의 비상시국이다.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분간 총리 중심의 내각 운영을 염두에 둔 비상 내각 시스템 가동도 준비해야 한다. 청와대 비서진의 전면 개편도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이미 일부 인사들은 최씨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실명까지 거론되고 있는 만큼 청와대 참모진의 총사퇴는 불가피하다.

물론 최씨의 각종 혐의와 관련, 조사할 게 있으면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법을 어겼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1년4개월 남아 있다. 북핵 문제와 부진한 경기 등 국가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 국정마비는 단 한 시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성숙하고 냉정한 국민의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