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 이후 전개된 국정혼란이 거의 보름째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혼란은 증폭되고 있다. 지난 주말 광화문에는 경찰추산 4만5000명을 헤아리는 인파가 모였고, ‘하야’ ‘탄핵’ 등의 과격한 주장들이 넘쳐났다. 분노가 일상이 됐다. 쏟아지는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보도를 접하면 허탈함과 자괴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비선의 사사로운 국정개입을 대통령이 조장했다지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조차 난감해진다. 사실이라면 나랏일을 책임진 공무원들부터가 상식 밖의 저질 국정농단 세력에 줄줄이 굴복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공직자도 해명이나 반성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역사의식이 부재한 정치권의 낯뜨거운 언행들은 특히 실망스럽다. 친박 비박으로 갈려 자중지란에 빠진 여당은 말할 것도 없다. 해법을 모색하기보다 조롱과 비아냥, 무조건적인 반대만 늘어놓는 야당의 행태는 걱정스럽기만 하다. 야당은 정부 여당의 ‘도덕적 권위’ 상실에 따른 권력 진공을 메우기보다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위태로운 줄타기에 여념이 없다. 반사이익을 챙기고,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가 엿보인다. 대중추수적인 후진적 행태는 대권주자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보다 더 흥분한 모습으로 분노를 주문하고, 불안을 증폭시킨다. 박근혜를 무릎 꿇리는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상황이다. 박근혜를 쫓아내면 자신이 차기 대통령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광장에서는 혁명이니 민중이니 하는 철지난 언어들이 춤을 춘다. 정치사회적 복선과 음모가 숨어 있는, 그리고 천하대란을 도모하는 듯한 메시지가 어지럽다. 설사 그것이 아니더라도 광장에는 공개적인 모욕과 저주가 가득하다. 이 열기로 무언가를 취하고자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이다. 지금은 4·19혁명이나 6·10항쟁과 같은 집단적 행동만이 출구였던 독재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대중의 독재, 광장의 독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헌정중단적 유혹에 몰입하는 것은 역사의 부메랑을 자초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