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홍콩서 사상 최대 '경매 잔치'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과 K옥션, 크리스티 코리아(홍콩 크리스티 한국지사)는 지난해 홍콩 경매에서 976억원어치의 그림을 판매했다. 지난해 국내 전체 경매 낙찰총액(1880억원)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올 상반기에도 세 회사의 홍콩 경매 낙찰액은 506억원을 기록하며 이 기간 국내 총액(964억원)의 50%를 웃돌았다. 크리스티 코리아가 처음 홍콩에 진출한 2004년 낙찰액 1억7000만원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액수다.

한국미술, 홍콩서 사상 최대 '경매 잔치'
이들 세 회사가 오는 25~27일 한국미술의 ‘세컨드 마켓’으로 떠오른 홍콩에서 사상 최대 판매전을 벌인다. K옥션은 25~26일 홍콩 르네상스하버뷰호텔에서 다음달 13일 서울에서 여는 겨울 경매에 선보일 대작을 모아 프리뷰 행사를 치르고, 크리스티 코리아는 26~27일 홍콩컨벤션센터에서 한국 현대미술품 34점을 경매한다. 서울옥션은 27일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250억원대의 대규모 경매 행사를 연다. 국내 3사의 이번 경매 및 프리뷰 행사에는 김환기, 박수근, 백남준, 제프 쿤스 등 국내외 작가 150여명의 작품 218점(약 400억원)이 출품된다. 미술 전문가들은 아시아 지역 슈퍼리치들이 이번 행사에서 한국 그림에 베팅하는 돈이 3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환기 45억~58억원대 그림 경매

김환기 황금색 점화 ‘12-V-70 #172’
김환기 황금색 점화 ‘12-V-70 #172’
국내 경매회사들은 국내외 컬렉터를 흥분시킬 만한 단색화는 물론 단색 계열 추상화, 민중미술까지 작품 영역을 넓히며 홍콩 판촉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27일 오후 6시부터 경매를 치르는 서울옥션은 한국 근·현대 미술품과 해외 거장 작품 123점(250억원)을 선보인다. 전략 상품은 추정가 45억~58억원에 출품한 김환기 화백의 황금색 점화 ‘12-V-70 #172’. 김 화백이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시기에 그린 이 작품은 금성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미술대표작가 100인 선집’ 표지에 실려 화제가 됐다. 그의 푸른색 점화가 지난 6월 K옥션 경매에서 세운 최고가 기록(54억원)을 깰지 주목된다.

홍콩 미술시장 단골 메뉴인 단색화가 작품도 20점이나 포진했다. 정상화의 1988년작 ‘무제 88-9-2’가 8억원에 경매를 시작하고 이우환의 ‘선’(8억~12억원), 박서보의 ‘묘법 № 23-75’(2억5000만~3억5000만원) 등이 눈길을 끈다. 박수근의 ‘앉아있는 여인’(5억~7억원), 장욱진의 ‘들판’(1억800만~2억5000만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도 출품했다.

크리스티 코리아는 김환기 남관 백남준 김창열 이성자 등 한국작가 작품 34점을 경매에 부친다. 김환기의 점화 ‘4-X-69 #121’를 추정가 12억~15억원대에 출품했고, 이우환의 추상화 ‘동풍’(9억~12억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계몽 78 RPMs’(4억~6억원), 이성자의 ‘하얀 거울’(3억~4억5000만원)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내놨다.

K옥션은 홍콩에서 다음달 서울에서 치를 겨울 경매 프리뷰 행사를 연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국내 작가 작품에 대한 아시아 지역 미술애호가들의 ‘식욕’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김환기 화백이 뉴욕에 머물 때 그린 30억~50억원대 작품을 비롯해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등 단색화가의 작품을 대거 걸 계획이다.

◆수십억원대 그림 줄줄이

외국 컬렉터들은 지난해 홍콩 경매시장에서 300억~400억원대의 한국 미술품을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한국 미술품을 사들이면서 그림값도 오르는 추세다. 김환기의 1970년작 ‘무제’는 지난해 4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8억6750만원에 팔려 홍콩에서 거래된 가장 비싼 한국 그림에 이름을 올렸다. 이우환의 1977년작 ‘점’(291×162.1㎝)은 2013년 11월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수수료를 포함해 24억원에 팔린 데 이어 박수근 ‘모란’(16억4519만원), 박서보의 ‘묘법’(14억원), 정상화의 ‘무제 05-3-25’(11억4200만원), 홍경택의 ‘연필Ⅱ’(9억6000만원) 등이 ‘수억원대 작품’ 대열에 합류했다. 또 남관 이성자 김창열 전광영 김태호 오세열 노상균 강형구 김동유 김덕용 최영걸 등 일부 작가의 작품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홍콩은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장소인 데다 미술품 판매에 법적 규제가 없어 예술 측면에서도 진정한 자유구역”이라며 “홍콩 경매를 통해 외국인이 한국미술의 새로운 바잉파워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