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분노와 탄식을 넘어
답답하고 암담하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었다니.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순실이 권력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대통령이 그것을 방조하고 지시했다니.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사실 이런 국정비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반복됐다. 노태우 대통령 때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사촌 동생이자 정무장관을 지낸 박철언 장관이 실세로 행세하며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감됐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아들인 김현철 씨가 비선 실세로 나서 역시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됐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세 명의 아들이, 노무현 대통령 때는 그의 형인 노건평 씨가, 이명박 대통령 때는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됐다.

이제 이런 비극을 끝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극을 끝낼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TV에 나와 정치적, 법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며 토론에 열을 올리고,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분노에 편승해 각자의 이해득실만을 따지며 정권 획득에 몰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게 나라냐’고 탄식한다. 그 탄식 속에는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이기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것을 알고 개선한다면 어쩌면 이번 사태가 우리 대한민국을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들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권력의 비대함에 있다. 정부는 법령을 통해 자원을 강제로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 정부권력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이다. 정부의 권력이 클수록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권한이 커진다. 소위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력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해관계가 강한 사람이나 집단은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유인을 갖는다. 정치인과 정당 또한 정권을 잡으면 막대한 권력을 갖게 되므로 정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러나 정권을 잡는 정치행위에는 많은 자원이 필요하므로 이해관계가 강한 사람이나 집단에 유리하게 자원배분을 해주면서 그 대가로 정치행위에 필요한 자원을 얻어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하고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해 자원이 배분되는 정실주의가 만연해진다.

정부권력을 줄이지 않으면 최고 권력자의 측근에 의한 국정비리 사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부권력이 비대한 상태에서는 제2, 제3의 최순실이 나타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국가가 점점 쇠퇴해 국가 존망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국정비리로 얼룩진 세도정치의 폐해로 나라가 망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순조의 왕비 집안인 안동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로 부정과 부패가 극에 달해 조선은 빠르게 쇠퇴해 갔다. 헌종 때는 풍양 조씨, 철종 때 다시 안동 김씨가 세도를 부렸다. 고종이 즉위하고 어린 고종을 대신한 흥선대원군이 그동안 세도를 누려온 안동 김씨를 몰아내고 혁신 정치를 했지만, 10년 후 고종이 친정하면서 흥선대원군은 실각하고 왕비 민씨 일족이 득세하며 또다시 세도정치가 시작됐다. 순조부터 고종까지 거의 100년 동안 이어진 세도정치는 조선 사회를 파탄으로 몰고 갔으며, 당시 국제 정세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조선은 끝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침 지금 개헌이 논의되고 있다. 이참에 정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을 만들자. 거기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고 희망을 이야기하자. 그렇게 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번영하는 국가로 만들자. 더 이상 국민들이 분노하고 참담해 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그런 국가를 만들자.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한국제도경제학회장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