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괴발개발] 세탁기에 반기 든 앱…"인류 최고 발명품은 옛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5년지기 개발자·세탁 공장 사장이 만든 '워시온'
낙후된 세탁 시장…단순 중개로는 성공 어려워
주먹구구식 세탁 서비스 세분화·표준화
"우리 경쟁자는 세탁소 아닌 '세탁기'"
낙후된 세탁 시장…단순 중개로는 성공 어려워
주먹구구식 세탁 서비스 세분화·표준화
"우리 경쟁자는 세탁소 아닌 '세탁기'"
아이를 낳는 기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바일 서비스를 처음 세상에 선보일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스마트폰 속 앱들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왜 태어났을까. 세상에 아무렇게 쓰는 앱은 있어도 아무렇게 만들어진 앱은 없다. 'Why not(왜 안돼)?'을 외치는 괴상한 IT업계 기획·개발자들. [박희진의 괴발개발]에서 그들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세탁기를 꼽는 이들이 많다. 전세계 여성을 빨래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면서 남녀의 역할과 사회구조 변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최초의 전기자동세탁기가 나온지 100년이 더 지난 2016년. 기술 문명의 혜택이 비껴간 몇 안 되는 가사 노동 분야가 '세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는 동네 세탁소가 아닌 집안 세탁기다."
구성우 워시온 대표(39·사진)는 "다림질이 귀찮아 셔츠도 안 산다"며 구시대적 빨래 노동에 반기를 들었다.
"세탁물을 일일이 분류해 애벌 빨래도 해야하고 세탁기 돌린 다음엔 냄새 안나게 잘 말려야 하고. 셔츠는 다림질까지 해야되고. 오늘은 인터뷰 때문에 간만에 셔츠 꺼내 입은 거에요.(웃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부분의 가사 노동이 서비스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빨래만 여전히 집안일의 영역으로 남아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구 대표가 '2차 빨래 노동 해방'을 외치며 만든 앱(응용프로그램)이 '워시온'이다. 워시온은 앱으로 세탁물의 수거·배달 시간을 설정하면 세탁 후 집까지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마음만 먹으면 집안일을 하나도 안하고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앱으로 다양한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고 가사 도우미를 불러 청소도 맡길 수 있어요.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은 밥을 잘 안해먹어 싱크대를 거의 안 쓴대요. 미래엔 집에서 싱크대나 세탁기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구 대표가 세탁에 관심을 가진 건 선점되지 않은 온라인 서비스 시장을 찾으면서부터다. 네이버에서 콘텐츠 매니저로 일하던 그는 2014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계획했다. 당시엔 이미 커뮤니티, 메신저, e커머스, 게임 등 웬만한 온라인 시장은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꿰차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기존 시장에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온라인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팔기로 하고 사업 아이템을 찾아봤어요. 현재 우리가 O2O라고 부르는 모델이었죠. 배달, 택시, 미용실, 청소 등 다양한 생활형 서비스를 후보군에 올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세탁이었어요."
누구나 옷을 입고 세탁을 하는 만큼 정기적인 수요는 보장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세탁 시장이 다른 서비스 업계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만큼 성공 기회가 가장 클 것으로 봤다.
"국내 음식배달 시장은 주문부터 배달까지 서비스 자체가 워낙 완벽해요. 앱이 음식점과 이용자를 중개해주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도가 보장되죠. 세탁 시장은 달라요. 세탁물 손상이나 분실 등 기존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커 중개만으로는 부가가치가 발생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구 대표는 당시 세탁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25년지기 친구를 찾아가 사업 계획을 털어놨다. 단순히 세탁물 수거·배달만 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 자체를 바꾸려면 세탁 기술을 잘 아는 업계 전문가가 필요했다. 당시 구 대표의 생각에 공감하며 2014년 12월 회사 설립에 동참한 친구가 채주병 워시온 공동 대표(38)다.
워시온은 채 대표의 주도로 믿을 수 있는 세탁 공장과 제휴를 맺고 새로운 세탁 상품을 만들었다. 옷에 따라 서비스를 세분화했고 공정 절차를 표준화해 메뉴얼을 만들었다. 주먹구구식 서비스를 탈피하고 어떤 공장에서 작업하더라도 균일한 만족도를 얻기 위해서였다.
"10년전과 비교하면 우리가 입는 옷은 더 좋아지고 다양해졌는데 동네 세탁소 서비스는 똑같잖아요. 사람들은 3만원대 패딩점퍼랑 90만원짜리 다운재킷을 같은 돈주고 세탁하길 원하지 않아요. 비싼 옷은 돈을 더 주고서라도 전문적인 관리를 받길 원하죠."
난관이 예상됐던 물류망 구축과 배달원용 앱 개발은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경력이 많은 신진욱 워시온 최고기술책임자(CTO·35)가 담당했다. 그는 '쏘카' '배달의민족'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O2O 서비스 개발에 참여했다. 구 대표가 네이버에서 일할 당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인연으로 워시온 설립 멤버에 합류했다.
"과거에 서비스를 개발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오프라인에서 렌트카가 돌아다니는 것과 배달원이 이동하는 것의 차이 정도였어요. 결국은 오프라인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만드는 일인데 시스템 설계 면에서 비슷한 게 많았습니다."
현재 워시온 물류 시스템에선 세탁 주문이 들어오면 효율성을 기준으로 배달원에게 자동 배정되고 방문 순서가 정해진다. 배달원이 같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집을 들릴 수 있도록 시스템이 짜여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 물류망은 기존 세탁 서비스 말고 다른 비즈니스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유모차, 카시트 같은 새로운 세탁 서비스나 수선 서비스 같은 게 될 수 있겠죠."
현재 워시온 이용자는 20대~30대 여성이 가장 많다. 앞으로 앱 사용이 서툰 중장년층 이상 고객을 위해 전화 주문이 가능하도록 콜센터를 만들고 카카오톡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들은 워시온을 O2O 서비스와 구분지어 달라고 했다. 단순히 기존 서비스를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없던 세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저희는 워시온을 '생활형 서비스'라고 설명해요. O2O는 보통 기존 오프라인 시장과 이용자를 온라인으로 이어주는 개념인데 워시온은 세탁 서비스 상품을 새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거든요. O2O 서비스보다는 정수기 관리 같은 정기 생활형 서비스에 가깝다고 할까요."
워시온으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를 묻자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던 구 대표가 웃음기를 빼고 입을 뗐다.
"집안일 중에서 청소, 식사 준비, 설거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해결됐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남은 세탁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해결하자는 게 저희의 목표에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워시온을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아, 진지한데 왜 웃으세요."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세탁기를 꼽는 이들이 많다. 전세계 여성을 빨래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면서 남녀의 역할과 사회구조 변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최초의 전기자동세탁기가 나온지 100년이 더 지난 2016년. 기술 문명의 혜택이 비껴간 몇 안 되는 가사 노동 분야가 '세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는 동네 세탁소가 아닌 집안 세탁기다."
구성우 워시온 대표(39·사진)는 "다림질이 귀찮아 셔츠도 안 산다"며 구시대적 빨래 노동에 반기를 들었다.
"세탁물을 일일이 분류해 애벌 빨래도 해야하고 세탁기 돌린 다음엔 냄새 안나게 잘 말려야 하고. 셔츠는 다림질까지 해야되고. 오늘은 인터뷰 때문에 간만에 셔츠 꺼내 입은 거에요.(웃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부분의 가사 노동이 서비스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빨래만 여전히 집안일의 영역으로 남아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구 대표가 '2차 빨래 노동 해방'을 외치며 만든 앱(응용프로그램)이 '워시온'이다. 워시온은 앱으로 세탁물의 수거·배달 시간을 설정하면 세탁 후 집까지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마음만 먹으면 집안일을 하나도 안하고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앱으로 다양한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고 가사 도우미를 불러 청소도 맡길 수 있어요.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은 밥을 잘 안해먹어 싱크대를 거의 안 쓴대요. 미래엔 집에서 싱크대나 세탁기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구 대표가 세탁에 관심을 가진 건 선점되지 않은 온라인 서비스 시장을 찾으면서부터다. 네이버에서 콘텐츠 매니저로 일하던 그는 2014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계획했다. 당시엔 이미 커뮤니티, 메신저, e커머스, 게임 등 웬만한 온라인 시장은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꿰차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기존 시장에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온라인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팔기로 하고 사업 아이템을 찾아봤어요. 현재 우리가 O2O라고 부르는 모델이었죠. 배달, 택시, 미용실, 청소 등 다양한 생활형 서비스를 후보군에 올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세탁이었어요."
누구나 옷을 입고 세탁을 하는 만큼 정기적인 수요는 보장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세탁 시장이 다른 서비스 업계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만큼 성공 기회가 가장 클 것으로 봤다.
"국내 음식배달 시장은 주문부터 배달까지 서비스 자체가 워낙 완벽해요. 앱이 음식점과 이용자를 중개해주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도가 보장되죠. 세탁 시장은 달라요. 세탁물 손상이나 분실 등 기존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커 중개만으로는 부가가치가 발생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구 대표는 당시 세탁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25년지기 친구를 찾아가 사업 계획을 털어놨다. 단순히 세탁물 수거·배달만 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 자체를 바꾸려면 세탁 기술을 잘 아는 업계 전문가가 필요했다. 당시 구 대표의 생각에 공감하며 2014년 12월 회사 설립에 동참한 친구가 채주병 워시온 공동 대표(38)다.
워시온은 채 대표의 주도로 믿을 수 있는 세탁 공장과 제휴를 맺고 새로운 세탁 상품을 만들었다. 옷에 따라 서비스를 세분화했고 공정 절차를 표준화해 메뉴얼을 만들었다. 주먹구구식 서비스를 탈피하고 어떤 공장에서 작업하더라도 균일한 만족도를 얻기 위해서였다.
"10년전과 비교하면 우리가 입는 옷은 더 좋아지고 다양해졌는데 동네 세탁소 서비스는 똑같잖아요. 사람들은 3만원대 패딩점퍼랑 90만원짜리 다운재킷을 같은 돈주고 세탁하길 원하지 않아요. 비싼 옷은 돈을 더 주고서라도 전문적인 관리를 받길 원하죠."
난관이 예상됐던 물류망 구축과 배달원용 앱 개발은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경력이 많은 신진욱 워시온 최고기술책임자(CTO·35)가 담당했다. 그는 '쏘카' '배달의민족'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O2O 서비스 개발에 참여했다. 구 대표가 네이버에서 일할 당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인연으로 워시온 설립 멤버에 합류했다.
"과거에 서비스를 개발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오프라인에서 렌트카가 돌아다니는 것과 배달원이 이동하는 것의 차이 정도였어요. 결국은 오프라인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만드는 일인데 시스템 설계 면에서 비슷한 게 많았습니다."
현재 워시온 물류 시스템에선 세탁 주문이 들어오면 효율성을 기준으로 배달원에게 자동 배정되고 방문 순서가 정해진다. 배달원이 같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집을 들릴 수 있도록 시스템이 짜여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 물류망은 기존 세탁 서비스 말고 다른 비즈니스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유모차, 카시트 같은 새로운 세탁 서비스나 수선 서비스 같은 게 될 수 있겠죠."
현재 워시온 이용자는 20대~30대 여성이 가장 많다. 앞으로 앱 사용이 서툰 중장년층 이상 고객을 위해 전화 주문이 가능하도록 콜센터를 만들고 카카오톡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들은 워시온을 O2O 서비스와 구분지어 달라고 했다. 단순히 기존 서비스를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없던 세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저희는 워시온을 '생활형 서비스'라고 설명해요. O2O는 보통 기존 오프라인 시장과 이용자를 온라인으로 이어주는 개념인데 워시온은 세탁 서비스 상품을 새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거든요. O2O 서비스보다는 정수기 관리 같은 정기 생활형 서비스에 가깝다고 할까요."
워시온으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를 묻자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던 구 대표가 웃음기를 빼고 입을 뗐다.
"집안일 중에서 청소, 식사 준비, 설거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해결됐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남은 세탁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해결하자는 게 저희의 목표에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워시온을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아, 진지한데 왜 웃으세요."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