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낮 12시 뉴욕 맨해튼 타임스 스퀘어에 있는 인터콘티넨탈호텔의 대연회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최한 한국 경제 설명회(IR)가 열렸다. 1번 헤드테이블에는 유 부총리가 씨티그룹,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기관 거물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바로 옆 3번 테이블에서는 은성수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월가의 사모펀드, 헤지펀드 고위 관계자들에게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여건)에 문제가 없음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사로 나온 스테이크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2번 VIP 테이블에는 한국 정부 관계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VIP로 초대를 받은 사모펀드 칼라일과 포모나캐피탈 등 월가의 큰 손들은 자기들끼리 환담했다. 이 테이블에는 김기환 뉴욕총영사가 앉도록 배정됐으나 그의 좌석은 오후 1시30분 IR이 끝나고 투자자들이 돌아갈 때까지 빈 자리로 남았다.

이날 IR의 테마는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였다. 유 부총리는 유창한 영어로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맡았다. 그는 “도대체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여러분이 궁금해 할 것 같아 업데이트를 해주러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 부총리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결정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감사하다(땡큐 무디스)”고 말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한국은 정치적 불확실성에도 지난달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고, 대외신인도에도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국가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CDS스프레드는 오히려 낮아졌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로 모두 발언을 마무리하면서 투자자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첫 질문은 한국 내 정치적 이슈에 관한 것이었다. 정치가 기업구조와 경영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제한된 시간이었고, 짧은 답변이었다.

각 테이블에 정부 관계자가 배치된 것은 보충설명을 위해서였지만 2번 테이블은 답을 해줄 한국 정부 인사가 없었다. 월가 투자자들은 도널트 트럼프의 첫 기자회견을 주제로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 시간 김기환 총영사는 뉴욕 JFK공항에 있었다. 한국으로 출국하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개인적으로’ 환송하러 나갔다. 국가 IR행사가 열리는 시간에 반 전 총장은 공항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짧은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었다.

김 총영사는 공교롭게도 반 총장의 출국 시간과 한국 정부 IR 일정이 겹치자 반 전 총장을 환송하기로 선택했다. 뉴욕총영사관의 공식적인 반 전 총장 환송행사는 지난해 12월21일 동포 간담회로 이미 끝난 상태였다.

이날 IR을 지켜본 정부기관 관계자는 “김 총영사가 IR에 참석했다고 해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겠지만 반 전 총장의 환송이라는 개인사와 IR 참석이라는 공사(公事)는 구분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총영사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달 6일 한 교민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면서 “한국의 신정부 출범시기가 앞당겨져 미국의 새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하게 되면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 헤드테이블에 자리가 배정된 톰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도 1시간이나 늦게 나타나 빈축을 샀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