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21)] 신목자필탄관(新沐者必彈冠) 신욕자필진의(新浴者必振衣)
초(楚)나라 굴원(屈原 BC343~277?)의 ‘어부사(漁父辭)’는 《고문진보 후집(後集)》에 실려 있다. 시인의 자(字)는 원(原)이며 이름은 평(平)이다. 출생지는 후베이(湖北)성 즈구이(歸)며 벼슬살이 도중에 정쟁에 휘말려 유배지인 후난(湖南)성 샹인(湘陰)의 미뤄수이(汨羅水)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뤄수이는 둥팅호(洞庭湖) 악양루와 후난성 성도인 창사(長沙)의 중간쯤이다. 어부가 묻고 당신이 답하는 형식으로 본인의 결백함을 시로 남긴 것이다.

새해 한 달을 뒤돌아보니 작심삼일(作心三日)이었다. 신년결심이라고 30일 이내 망각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기야 잊은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망각상태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그 사이에 머리가 내린 결심이 아니라 몸의 습관을 따라가는 구태스러운 자기를 발견한다. 그래도 모른 체하며 그냥 내버려둬야 속이라도 편하겠지. 그러자니 또 뭔가 켕긴다. 구정 무렵 다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다가 신정 때 세운 계획을 섬광처럼 기억하고는 스스로에게 머쓱해진다.

작품의 두 줄 모두 신(新)자로 시작하기에 과감하게 년(年)자를 보탰다. 양력설에는 머리를 감고(新年沐) 음력설에는 목욕을 한다(新年浴)라고. 양력설 이후 달포 동안 머리로써 새해 설계를 하고 음력설부터 비로소 몸을 움직이며 실천에 들어간다는 부연설명을 달아본다. 뇌세포의 이런저런 구상이 손발까지 전달되는 데 한 달쯤 걸렸다고 해두자. 얼떨결에 새해를 맞이했고 또 한 달이 훌쩍 흘러 구정이 코앞이다. 양력은 까치설날이고 음력은 우리설날이라 했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은 것이 아니리라.

원칙주의자 굴원은 목욕 후 반드시 모자와 옷을 털고서 착용했다. 이 모습을 본 어부는 “창량에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량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濯兮 可以濯吾足)”고 훈수했다. 원칙만큼 타이밍도 중요하다. 물이 맑으면 수건을 빨고 물이 흐리면 양말을 빨 일이다. 더 탁할 때는 걸레를 빨면 된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