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왓슨 도입은 좋지만…환자 빅데이터 고스란히 해외로"
“길병원 부산대병원에 이어 지역 대학병원 한두 곳이 추가로 IBM의 인공지능(AI) 왓슨 도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국내 환자들의 빅데이터만 해외에 넘겨주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AI 연구를 하는 한 대학병원 교수의 말이다.

왓슨은 환자 정보를 활용해 해외 연구논문 등을 분석한 뒤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해주는 기기다. 국내 의료기관들은 왓슨이 제시한 치료법을 환자에게 설명한 뒤 환자 스스로 치료방법을 선택하도록 돕고 있다. 환자 호응은 높은 편이다. 의사에게 치료법을 전달받은 환자 상당수가 왓슨이 제시한 치료법을 선택할 정도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불안감도 내비친다. 왓슨을 쓰는 병원이 늘면 국내 의료 빅데이터가 해외로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의료 주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왓슨에 입력하는 환자 정보는 주민등록번호 등을 지운 비식별 정보다. 이는 환자의 개인정보가 보호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 국내 의료 빅데이터가 보호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내 환자의 임상 정보는 AI를 훈련시키는 또 다른 재료가 될 수 있다. 환자 정보뿐 아니다. 좋은 치료법과 중간 치료법, 나쁜 치료법을 나란히 보여주는 왓슨은 의사와 환자가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이유를 묻도록 설계돼 있다. 의사와 환자가 선택하는 이유에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서’라는 항목도 있다. 이를 통해 국내 건강보험 체계까지 학습할 수 있다. 의료용 AI를 개발하는 의사들이 ‘AI 연구는 시간 싸움’이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서도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AI 기술이 있는 공학도와 의료 빅데이터를 지닌 병원 간 협력 연구도 늘고 있다. 가능성은 크다. 시장을 선점한 AI가 찾지 못한 응용 분야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가 문제다. 일부 대학병원은 AI 연구 법률 자문을 위한 별도 위원회를 꾸렸을 정도다.

빅데이터 주도권 싸움은 속도전이다.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시간 낭비를 할 때가 아니다. 다양한 민간 개발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줄 때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