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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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이 석유화학에 승부를 건다. 내년 4월 완공을 목표로 울산공장에 4조800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정유·화학 복합시설을 짓고 있다.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잔사유(원유찌꺼기)를 이용해 고부가 제품인 휘발유나 경유를 뽑아내는 동시에 석유화학 제품도 생산하는 시설이다.

현재 프로젝트 진행률은 35%를 넘었다. 에쓰오일은 “당초 계획보다 4% 이상 빠르게 공정이 진척되고 있다”고 밝혔다. 에쓰오일은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수익성이 지금보다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부가 제품 비중이 줄어들고 고부가 제품 비중이 늘어날 것이란 이유에서다.

에쓰오일의 제품 포트폴리오에서 석유화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이 비중이 13%로 늘어난다. 여기에 윤활유 원료인 윤활기유(6%)까지 포함하면 비(非) 정유 부문 비중은 14%에서 19%로 증가한다.

고부가 경질유 비중도 74%에서 77%로 늘어난다. 반면 저부가 중질유 비중은 12%에서 4%로 감소한다. 중질유는 원유보다 가격이 낮다. 이 때문에 비중이 낮을수록 수익성 측면에서 정유사에 유리하다. 에쓰오일은 “같은 양의 원유를 투입하더라도 이전보다 고부가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돼 원가 경쟁력과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쓰오일이 석유화학 부문 투자를 늘리는 것은 수익성 때문이다. 정유사의 매출은 크게 정유 부문과 석유화학 부문으로 나뉜다. 정유 부문은 원유 정제로 이익을 얻는다. 정제 부문은 영업이익률이 낮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정제 부문 영업이익률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2~3%대에 그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석유화학 등 비정유 부문은 이익률이 높다. 지난해 에쓰오일의 수익구조를 보면 이런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매출 16조3218억원, 영업이익 1조6929억원을 올렸다. 저유가 영향으로 매출은 전년보다 8.8%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07.1% 늘어나며 2001년 기록한 이전 최고치(1조6337억원)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을 사업 부문별로 보면 정유 7575억원, 석유화학 5169억원, 윤활기유 4185억원이었다.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5%, 30%, 25% 정도다. 석유화학, 윤활기유 등 비정유 부문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5%로 정유 부문보다 높다.

특히 에쓰오일 매출에서 석유화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윤활기유는 8%에 불과하다. 매출 비중에 비해 이익기여도가 훨씬 높다는 의미다.

이는 에쓰오일만의 현상이 아니다. 다른 정유사들도 석유화학, 윤활기유 등 비정유 부문의 이익 비중이 매우 높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석유화학을 비롯한 정유 부문이 정유사들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며 “특히 석유화학 부문을 확대하는 것이 요즘 정유사들의 추세”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중국 석유회사 시노펙 등과 석유화학 합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나, 이달 초 미국 화학회사 다우케미칼의 고기능성 수지(EAA) 사업을 4200억원에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쓰오일은 SK이노베이션과 달리 해외 석유화학사 인수합병(M&A)이나 해외 기업과의 합작보다는 자체 설비 투자를 통해 석유화학 사업을 키우는 전략을 쓰고 있다.

에쓰오일은 이번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연 40만5000t의 폴리프로필렌(PP)과 연 30만t의 산화프로필렌(PO)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에쓰오일은 지금도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프로필렌을 생산하고 있다. 프로필렌은 범용제품이다. 이를 한 단계 더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인 제품이 폴리프로필렌이나 산화프로필렌이다. 이들 제품은 자동차 내장재, 가전제품 외장재·단열재, 우레탄 소재 등으로 사용되는 고부가 제품이다. 세계적으로 향후 상당 기간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에쓰오일이 생산하는 제품의 92%는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이나 벤젠이다. 하지만 이번 잔사유 고도화·석유화학 복합시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이들 제품의 비중은 63%로 줄어든다. 반면 폴리프로필렌, 산화프로필렌 등의 비중은 8%에서 37%로 늘어난다.

석유화학 '통큰 투자' 에쓰오일, 종합 에너지회사로 간다
에쓰오일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되는 석유화학 제품은 저가의 잔사유를 이용하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이 높다”며 “가장 수익성 좋은 종합 에너지 회사로 발돋움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오스만 알 감디 에쓰오일 사장도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보수적 시나리오를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미래를) 분석했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향후 큰 이익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