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우리는 소중한 나라에 살고 있다
뮤지컬 ‘영웅’의 앙코르 무대가 막을 올렸다.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창작 뮤지컬이다. 국정농단으로 어지러운 요즘 시국 탓인지 개인의 욕심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했던 의인의 이야기가 선 굵은 감동을 준다.

지금도 중국 하얼빈엔 안중근 의사 박물관이 중앙역 한쪽에 있다. 직접 써놓은 서간과 사진들, 각종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면 유리창 너머로 하얼빈역 1번 플랫폼도 보인다. 자세히 찾아보면 바닥에 있는 표식도 눈에 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위치를 기록한 표식이다. 역사 교과서 속의 옛이야기가 아닌 묵직한 현실감에 숙연한 마음이 절로 든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근대 신문물을 수용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유년시절부터 개화된 사고를 키우며 자랐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전에는 교육 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개인사도 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조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砲殺)했을 당시의 나이는 서른한 살이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무덤은 아직까지 발견조차 되지 않고 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생의 시신을 일제는 연골을 제거해 무릎을 꿇린 채 관에 담아, 후세 사람들이 찾아볼 수 없게 훼손하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버렸다는 후문만 무성하다.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극적으로 활용했다. 독립운동을 펼치던 애국지사들과 함께 단지(斷指)동맹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해주 크라스키노의 대나무 숲, 거사를 진행하기 전에 동지들과 사진을 찍었다는 조린공원의 사진관, 재판에 넘겨져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지금은 다롄이라고 불리는 뤼순의 형무소 등은 지금도 찾을 수 있는 실존하는 역사의 흔적들이다. 뮤지컬이 막을 올리면 7발의 총성이 들려오는데 이 역시 역사적 사실을 극에서 활용한 경우다. 4발은 이토에게, 3발은 주변에 있던 일본인들에게 발사한 것이었는데, 혹여 이토를 오인했을 경우에 대한 대비 때문이었다.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극적 배려들이다.

‘영웅’은 뮤지컬적인 재미도 잘 담은 작품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주얼의 특수효과다. 달려오는 기차는 영상으로 표현되다가 삽시간에 세트로 변화되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헬기가 날아오르는 서양의 대표적 뮤지컬 작품들과 견주어봐도 크게 뒤떨어질 것이 없는 재미난 무대 효과다. 물론 무대의 리얼리티를 살려주는 구실도 톡톡히 해낸다.

이번 앙코르 무대에서는 네 명의 배우들이 안중근 의사로 등장한다.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정성화와 발군의 가창력을 선보이는 양준모, 최근 안정적인 연기까지 장착한 가수출신 이지훈, 그리고 인기스타 안재욱이다. 각각의 배우가 보여주는 조금씩 다른 개성이 기대했던 것보다 흥미롭다. 그릇된 신념의 또 다른 일본 제국주의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로는 관록의 김도형과 이정열이 윤승욱과 함께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1막 마지막에 등장하는 뮤지컬 넘버인 ‘영웅’과 ‘그날을 기약하며’다. 광활한 대륙에서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조들을 떠올리면 절로 눈물 흐르는 비장미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희생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요즘 시끄러운 논란의 주역들에게 정말이지 꼭 보게 하고 싶다.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