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선 한국리서치 사장 "객관적인 답 나오도록 질문 설계하는 게 리서치 업무"
“리서치란 업무는 수공예 같다고 보시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100% 사람의 손으로만 이뤄지거든요. 질문자의 매너와 목소리 톤, 질문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설문이라도 전부 답이 달라져요. 객관적인 답이 나올 수 있도록 질문을 제대로 설계하는 게 리서치 기업의 주 업무입니다. 아무리 인공지능(AI)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이런 걸 AI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내 리서치업계 여장부’로 잘 알려진 정재선 한국리서치 사장(사진)은 최근 서울 논현동 본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한국리서치 공채 1기로 입사해 지난해 1월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의 후임 사장으로 임명됐다. 정 사장은 “사내에서도 노 회장이 계속 사장직을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사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에 매우 놀랐다”며 “리서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온 세월만큼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언제나 ‘현재를 산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돌아보면 참 아등바등 지내 왔네요. 아마 처음부터 뭔가 계획을 하고 살았다면 제풀에 지쳤을지도 몰라요. 리서치도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야근과 주말 근무가 워낙 많아 때론 두 자녀를 주말 근무 때 회사에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모든 여성의 난제죠.”

정 사장은 “사람들은 흔히 리서치 하면 정치 여론조사를 많이 떠올리는데, 이건 회사 전체 매출 중 2% 정도밖에 안 된다”며 “기업 마케팅과 정부기관 정책수행 관련 리서치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또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전공이 모두 다르다”며 “시장조사 수요가 과거보다 범위가 넓어지고, 구체적인 게 많아지면서 디자인이나 문화인류학, 컴퓨터 등 다양한 전공자가 입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신입사원을 뽑을 때 우리 회사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는 사람보단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인상의 사람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너무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저게 진짜 뭔가 경험했거나 알고 하는 말일까’ 의심부터 하게 된다”며 “리서치를 근사한 전문직으로만 생각하고 왔다가 중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업무 관련 전문 지식은 일하면서 배우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사장은 “리서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해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준을 분명히 해야 자료 왜곡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똑같은 통계 자료를 갖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는 이유가 자료를 읽을 때 기준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만 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리서치 프로젝트 업무 시 프로젝트와 관련된 업종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 역시 리서치 전문가의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리서치는 뭐니 뭐니 해도 믿음을 먹고 자라는 일입니다. 오랜 경험과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절대 ‘한 방’에 되는 일이 없는 직업이죠. 어쩌면 그래서 답답하다 싶기도 할 수 있지만, 저는 지금 이 일을 하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무형의 서비스로 돕는 일이니까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