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젠더 혁신
여성교육은 대한제국의 ‘구국의 선택’이었다. 대한제국 황실은 일제로부터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숙명여대 전신인 명신여학교를 설립했다. 여성교육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전인 1906년의 일이다. 근대로의 시대 전환기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위기를 근대식 여성교육으로 극복하겠다는 시도는 그 자체로 혁신이었다. 그 교육혁신의 정신이 우여곡절과 아픔의 현대사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로부터 111년이 지난 지금, 여학생의 73.5%가 대학에 진학해 고등교육을 받고 있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2000년 48.8%에서 2016년 52.1%로 꾸준히 늘었다.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 성과 구분되는 사회적 성 개념인 ‘젠더(gender)’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생물학적 차이에 기반을 둔 개인의 구성 요소를 반영하는 ‘젠더 혁신’으로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특히 의학 및 공학 연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이들 분야는 그동안 젠더 요소의 고려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생물학적 차원의 남녀 특성이 각각의 개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영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연구 분야의 이런 경향은 대학 교육 영역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융합이다. 이를 통해 개별 행위자의 특성을 데이터로 수집, 축적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는 생물학적 성별, 사회적 지위, 개인적 취향 등의 요소가 모두 포함된다. 의학, 공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연구 및 기술개발 과정에 개인을 구성하는 더 많은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 모든 공급자가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개인화한 미래의 소비자라면, 젠더 혁신은 그 길을 여는 또 다른 열쇠가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은 모든 개인화한 특성을 수용해야 한다. 다수와 집단이 효용성 측면에서 우세한 시대는 지났다. 집단과 구분되는 개인을 넘어, 개인이 가진 다양한 요소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어쩌면 우리 모두를 위한 축복일지 모른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리는 모두 남들과 다른 개인적 특성과 섬세한 취향으로 완성되는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정애 < 숙명여대 총장 kangjap@s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