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장관 틸러슨의 한·중·일 3국 순방이 지난 주말 마무리됐다. 오고간 말이 요란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의문부호를 붙일 수밖에 없다. 난마처럼 얽힌 동북아 위기의 해법이 절실했다. 그러나 중국 페이스에 말리고 말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틸러슨이 데뷔무대에서 중국에 외교적 승리를 안겼다’고 혹평했다.

성과가 없지는 않다. ‘북한 위협이 미·중 양국의 최우선 과제’라거나 ‘군사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등의 단호한 언급이 그렇다. 하지만 최종 방문지 중국에서의 기자회견에는 사드 문제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북핵해결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물론 다음달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의도된 ‘낮은 자세 전략’이라는 해석이 있는 만큼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가 출신 틸러슨 장관의 비외교적 직설화법에서 한·미 관계가 어딘지 삐걱거린다는 인상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순방 도중 틸러슨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을 ‘아태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규정했다. 반면 한·미 동맹은 ‘지역안정과 관계가 있는 중요한 파트너’로 지칭했다. 일본은 핵심동맹이지만 한국은 그 하부구조일 뿐이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100% 한국과 함께할 것’이라던 트럼프나, ‘한·미 동맹은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이라던 오바마의 언급과 온도차가 느껴진다. 폭로라도 하듯 ‘한국 측의 초대가 없어서 만찬을 생략했다’고 한 틸러슨의 말이 겹치면 당혹감은 더 커진다. ‘의사 소통에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고 우리 외교부가 해명했지만, 대선판 눈치보기라도 하는 것인지 꺼림칙하다.

한·미 동맹은 우리에게는 사활적 이해관계다. 번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예속’을 떠드는 일각의 목소리는 민족주의적 싸구려 감상론에 불과하다.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 구호 아래 외교 안보 갈등을 마다하지 않고 원점에서 재검토 중이다. 독일이 ‘안보 무임승차’한다며 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비난한 게 엊그제다. 세상은 핑핑 돌아가는데 한국 외교부는 무슨 생각인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