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심혈관계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심혈관계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노화로 미각이 무뎌져 짜게 먹어야 그나마 맛을 느끼는 사람한테 ‘싱겁게 먹어라’, 업무 특성상 술을 안 마실 수 없는 사람에게 ‘술 좀 줄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의사 입장에서만 바라본 처방입니다. 환자의 생활패턴과 실천 가능성을 고려해 진료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혈압, 부정맥, 심근경색, 협심증 등 심혈관계질환은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하다. 우리 주변에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한국인 사망원인 통계에도 항상 상위권에 등장한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심장과 혈관은 우리 몸 구석구석 영향을 안 주는 데가 없다”며 “바꿔 말하면 그만큼 고생을 많이 하고 말썽도 많이 피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자신을 ‘의학계의 이단아’라고 말한다. 환자에게 교과서적이고 청교도적 삶을 요구하는 처방보다는 ‘짜게 먹고 싶으면 먹되 이뇨제를 써서 높아진 혈압을 잡아라’ ‘술은 계속 마시되 대신 안주를 끊어라’ 같은 현실적인 처방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은 수술 방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큰 수술이 많은 심혈관계질환을 수술 없이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김 교수는 흉부 절개 없이 허벅지 동맥을 통해 심장에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TAVI’ 시술의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이다. 2011년부터 집도한 시술이 100건을 넘었다. 그에게서 심혈관계질환의 원인, 치료법, 예방법 등을 들어봤다.

▷심혈관계질환은 왜 생기나.

“혈관에 문제가 있거나 심장 근육에 문제가 있어서 생긴다. 혈관의 탄력이 떨어지거나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류에 지장을 초래하는 동맥경화가 생길 수 있고 혈관이 아예 막혀 심장에 피가 안 가면 심근경색이 올 수도 있다. 혈관 관련 질환은 간단히 말하면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서 그렇다. 기름진 음식 섭취, 과식, 과음 등 식습관과 운동할 시간이 없는 바쁜 일상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바이러스로 인해 심장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서 펌프 기능이 떨어져 심부전 같은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혈관에 기인한 질환이 대부분이다.”

▷유전적 요인은 없나.

“고혈압, 당뇨병 등 심혈관계질환은 유전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평소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어도 심혈관계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생활습관에 더 신경써야 하는 건 당연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필요하면 약물 처방을 일찍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생활요법은 너무 당연한 처방 같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콜레스테롤과 혈당 수치, 복부 비만도 등 객관적 데이터를 보고 정도가 심하지 않은 환자에게는 현실적인 처방을 권한다. 예를 들어 평소 짜게 먹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음식을 싱겁게 먹을 수는 없다. 이런 환자에게 짜게 먹으면 왜 고혈압이 생기는지 충분히 설명은 해준다. 하지만 싱겁게 먹는 게 힘들면 입맛은 유지하되 대신 이뇨제를 처방해주겠다고 권한다. 술을 좋아하는 환자에게 중성지방이 많고 복부비만이라고 해서 술을 끊게 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술은 마시되 안주를 끊으라고 권한다. 술만 마시면 에너지로 저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노화와도 관련이 있나.

“심혈관계질환은 노화와 관련이 있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심장 혈관이나 근육의 탄력이 떨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노화로 인해 생기는 대표적인 심혈관계질환이 퇴행성 대동맥 판막 질환이다.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피를 뿜어내는 과정에서 판막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이게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다.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치료하는데 수술로 하는 방법이 있고 시술로 하는 방법이 있다.”

▷시술로 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수술로 하는 방법은 가슴을 열고 심장 일부분을 절개해 직접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것이다. TAVI는 가슴을 절개하지 않고 허벅지 동맥에 가느다란 관을 삽입해 심장까지 올리고 그 안으로 밀어넣은 인공판막을 대동맥 판막 자리에 자리잡게 하는 시술이다. TAVI 시술은 기존 수술법에 비해 합병증이나 사망 확률을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다만 환자가 수술비의 80%를 부담하는 선별적 급여이기 때문에 시술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 환자가 적지 않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