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옥션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추정가 55억~70억원에 출품된 김환기의 점화 ‘고요’를 감상하고 있다.
K옥션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추정가 55억~70억원에 출품된 김환기의 점화 ‘고요’를 감상하고 있다.
48억→54억→63억?…김환기 그림 최고가 다시 쓸까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1913~1974)은 1963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해 명예상을 받은 뒤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홍익대 미술대학장과 한국미술협회 회장직을 과감히 버리고 다시 그림을 시작한다는 각오로 예술세계의 혁신에 채찍을 가했다. 1974년 뉴욕에서 뇌출혈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는 잭슨 폴록을 비롯해 윌렘 데 쿠닝,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등 추상표현주의 대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머나먼 이국 땅 뉴욕에서의 역경과 고난, 가난과 외로움은 모노크롬(단색화) 형태의 독특한 점화로 태어났다. 그의 점화는 동양정신에 바탕을 둔 긍정적인 숭고 미학을 표방해 인간에게 내재된 비극성에 초점을 둔 추상표현주의 숭고 정신과 궤를 달리했다. 국내외 미술애호가의 주목을 받으며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 번이나 갈아치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환기 55억~70억원대 최고가 도전

48억→54억→63억?…김환기 그림 최고가 다시 쓸까
김 화백 미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뉴욕시대’ 점화가 네 번째 국내 미술품 최고가 기록 경신에 나선다. 김 화백이 1973년 뉴욕에서 그린 청색 점화 ‘고요(Tranquility) 5-IV-73 #310’이 오는 12일 K옥션의 ‘4월 경매’에서 추정가 55억~70억원에 나온다. 서울 한남동 초호화 빌라 ‘루시드 하우스’(전용면적 244㎡)와 맞먹는 가격이다.

가로 205㎝, 세로 261㎝의 크기로 밤하늘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점의 움직임과 사각형 흰색 띠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김 화백은 1973년 4월10일 일기에서 이 그림에 대해 “3분의 2 끝내다. 마지막 막음은 완전히 말린 다음에 하자. 피카소 옹 떠난 후 이렇게도 적막감이 올까”라고 적기도 했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작가가 1974년 작고하기 전에 그린 회색 톤 작품과 비교하면 생명력과 서정성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경매회사들의 기록 경신 ‘수 싸움’

김 화백 작품에 대한 국내외 미술애호가들의 ‘거침없는 식욕’에 그림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며 시장의 판을 키우고 있다. ‘큰손’ 컬렉터들은 작년 서울과 홍콩 경매시장에서 김 화백의 작품 88점을 사들이는 데 415억원을 ‘베팅’했다. 지난해 국내 전체 경매시장(1720억원)의 24%에 달하는 액수다. 이들의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그림값(호당 기준) 역시 지난해 36%나 급등했다. 40억원 이상의 초고가 점화도 다섯 점이나 탄생했다.

미술품 경매회사들의 최고가 경신을 위한 ‘수 싸움’도 김 화백의 그림값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서울옥션은 작년 4월 점화 ‘무제’(48억6750만원)를 고가에 낙찰시켜 국내 미술품 최고가 경쟁에 불을 붙였다. 반격에 나선 K옥션은 작년 6월 여름 경매에서 푸른색 점화 ‘무제 27-VII-72 #228’을 출품해 낙찰가를 54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서울옥션은 5개월 뒤 홍콩에서 노란색 점화 ‘12-V-70 #172’(63억원)로 맞대응에 성공했고, K옥션은 이번 경매에서 청색 점화 ‘고요’로 다시 최고가를 쓰겠다는 각오다.

◆한국과 미국 추상화, 최고가 25배 차

1970년대 김 화백이 그린 점화가 시장에서 초고가에 거래되는 이유는 뭘까. 미술전문가들은 최근 국제 화단에 불어닥친 단색화 열풍과 작품성에 대한 영향 덕분에 김 화백 작품에 대한 해외 수요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 미술시장에서 김 화백의 점화가 아직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미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 잭슨 폴록의 ‘넘버 5, 1948’(1억4000만달러)에 비하면 김 화백의 작품 최고가(63억원)는 25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김 화백의 그림값이 ‘언제까지 얼마나 오를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까닭이다.

김윤섭 미술경영연구소장은 “김 화백이 국제시장에서 한국의 추상화 대표 작가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저평가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100억원대 진입은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