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가 금지한 '석유수입부과금' 떼는 정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미국과 통상마찰 '불씨'
미국 원유 수입 독려하곤 준조세…정부, 통상마찰 우려엔 "별일 있겠나"
수입 늘면 미국 공세 뻔한데 대응책 없이 '느긋'
"연 2조 '정부 쌈짓돈' 없애거나 세금 전환을"
미국 원유 수입 독려하곤 준조세…정부, 통상마찰 우려엔 "별일 있겠나"
수입 늘면 미국 공세 뻔한데 대응책 없이 '느긋'
"연 2조 '정부 쌈짓돈' 없애거나 세금 전환을"
미국산(産) 원유 및 셰일가스 수입을 독려 중인 정부가 정유회사에 일종의 ‘준조세’인 석유수입부과금을 매겨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 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미국산 원유·셰일가스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들여온 민간 기업들은 억울한 처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은 ‘수입 관련 부과금’을 금지하고 있다. 한·미 통상 문제로까지 불거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작년 11월 미국산 원유 200만배럴을 국내로 들여온 GS칼텍스에 수입부과금 51억원을 내도록 했다. 지난 9일 200만배럴 수입 계획을 발표한 현대오일뱅크에도 부과금을 물릴 예정이다. 수입부과금은 정부가 에너지사업에 쓰려고 원유 수입업체에 매기는 일종의 준(準)조세로 L당 16원이다. 기름 원가에 포함된다. 관가와 법조계에선 미국산 원유 및 셰일가스 수입부과금이 한·미 FTA 위반이란 지적이 나온다. 근거는 FTA 협정문 2-10조 ‘각국은 수입에 대해 부과하는 성격 여하를 불문한 모든 부과금이 재정적 목적을 위한 과세가 되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조항이다. 한 관세 전문가는 “미국 원유 수입이 늘면서 통상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입 관련 모든 부과금은 관세에 포함된다’는 내용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1-4조도 협정 위반 지적의 근거로 꼽힌다. 관세에 포함하지 않는 일부 예외(상계관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3조2항에 합치하는 부과금 등)가 있지만 석유부과금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3%인 석유 관세를 폐지했기 때문에 부과금도 없어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수입 늘 텐데…통상 갈등 우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미 간 통상 문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석유수입부과금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았다.
1975년부터 2015년 말까지 미국 정부는 미국산 원유 수출을 금지해 한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량이 ‘제로(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미국의 원유 수출 금지 해제 이후 작년 상반기까지도 국내 정유사들은 굳이 미국산 원유를 수입할 이유가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나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에서 들여오는 게 운송비 등 비용 측면에서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변한 것은 작년 4분기부터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미(對美) 흑자국에 대한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원유와 셰일가스를 적극 수입하기로 하고 관련 업계를 독려했다. 업체들은 마진이 낮음에도 수입을 추진했다. GS칼텍스는 미국산 원유 200만배럴을 이미 국내에 들여왔고 현대오일뱅크도 다음달부터 200만배럴을 수입할 계획이다. 다른 업체들도 수입을 고려 중이어서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은 원유 및 셰일가스 수출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수입부과금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까지는 한·미 간 원유 교역량이 적어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을 수 있지만 앞으론 ‘현미경’ 잣대를 들이댈 것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발 빠른 로펌, 대책 없는 정부
로펌 등에선 석유수입부과금이 한·미 간 통상 이슈가 될 것에 대비해 ‘스터디’에 들어갔다. 한 통상 전문 변호사는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진행될 것”이라며 “일부 대형 로펌은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 자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느긋하다. 주무부처인 산업부 관계자는 “과거 FTA 협상 테이블에서는 포괄적인 부과금 금지 얘기만 있었지 석유수입부과금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며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과해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긴장하고 있다. 다른 부처 관계자는 “산업부의 미주통상과 석유산업과 등 2~3개 과(課)가 모여 대응책을 논의 중인데 뚜렷한 대응 논리를 못 찾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정부 차원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산업부가 ‘에너지 및 지원사업 특별회계’ 때문에 석유수입부과금이 통상 갈등의 소지가 있는데도 놓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특별회계 5조2476억원 중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수입부과금(2조2770억원) 비중은 43.4%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특별회계 재원의 절반 가까이가 석유업계에서 나오는데 정부는 재원을 기후변화 대응, 석탄공사 지원 등에 ‘쌈짓돈’처럼 쓰고 있다”며 “석유수입부과금 존재 이유 자체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통상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유수입부과금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온다. 부과금이 사라지면 기름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입부과금이 있는 곳은 6개국뿐이다. 없애는 게 어려우면 일본처럼 ‘세금’으로 전환해 특정 산업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석유수입부과금을 내국세 형태로 전환하는 게 통상 갈등 소지를 없앨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황정수/이태훈 기자 hjs@hankyung.com
‘수입 관련 모든 부과금은 관세에 포함된다’는 내용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1-4조도 협정 위반 지적의 근거로 꼽힌다. 관세에 포함하지 않는 일부 예외(상계관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3조2항에 합치하는 부과금 등)가 있지만 석유부과금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3%인 석유 관세를 폐지했기 때문에 부과금도 없어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수입 늘 텐데…통상 갈등 우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미 간 통상 문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석유수입부과금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았다.
1975년부터 2015년 말까지 미국 정부는 미국산 원유 수출을 금지해 한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량이 ‘제로(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미국의 원유 수출 금지 해제 이후 작년 상반기까지도 국내 정유사들은 굳이 미국산 원유를 수입할 이유가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나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에서 들여오는 게 운송비 등 비용 측면에서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변한 것은 작년 4분기부터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미(對美) 흑자국에 대한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원유와 셰일가스를 적극 수입하기로 하고 관련 업계를 독려했다. 업체들은 마진이 낮음에도 수입을 추진했다. GS칼텍스는 미국산 원유 200만배럴을 이미 국내에 들여왔고 현대오일뱅크도 다음달부터 200만배럴을 수입할 계획이다. 다른 업체들도 수입을 고려 중이어서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은 원유 및 셰일가스 수출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수입부과금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까지는 한·미 간 원유 교역량이 적어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을 수 있지만 앞으론 ‘현미경’ 잣대를 들이댈 것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발 빠른 로펌, 대책 없는 정부
로펌 등에선 석유수입부과금이 한·미 간 통상 이슈가 될 것에 대비해 ‘스터디’에 들어갔다. 한 통상 전문 변호사는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진행될 것”이라며 “일부 대형 로펌은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 자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느긋하다. 주무부처인 산업부 관계자는 “과거 FTA 협상 테이블에서는 포괄적인 부과금 금지 얘기만 있었지 석유수입부과금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며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과해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긴장하고 있다. 다른 부처 관계자는 “산업부의 미주통상과 석유산업과 등 2~3개 과(課)가 모여 대응책을 논의 중인데 뚜렷한 대응 논리를 못 찾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정부 차원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산업부가 ‘에너지 및 지원사업 특별회계’ 때문에 석유수입부과금이 통상 갈등의 소지가 있는데도 놓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특별회계 5조2476억원 중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수입부과금(2조2770억원) 비중은 43.4%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특별회계 재원의 절반 가까이가 석유업계에서 나오는데 정부는 재원을 기후변화 대응, 석탄공사 지원 등에 ‘쌈짓돈’처럼 쓰고 있다”며 “석유수입부과금 존재 이유 자체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통상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유수입부과금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온다. 부과금이 사라지면 기름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입부과금이 있는 곳은 6개국뿐이다. 없애는 게 어려우면 일본처럼 ‘세금’으로 전환해 특정 산업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석유수입부과금을 내국세 형태로 전환하는 게 통상 갈등 소지를 없앨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황정수/이태훈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