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 "재정 확대해야 가계부채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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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5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금융정책은 가계부채의 위험을 낮출 뿐 본질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며 “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정부 역시 재정정책을 계속 펼쳐 가계 소득이 늘어나도록 하는 게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다.
임 위원장은 가계부채 문제 외에도 기업 구조조정, 정부 조직개편,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수익성, 서민층 금융지원 방안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1시간30분가량 소신을 밝혔다. 한국경제신문은 박준동 금융부장과 이태명·정지은 기자가 인터뷰에 나섰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대우조선 하면서 체중이 4㎏은 빠진 것 같다. 졸업 작품이어서 그런지 신경을 많이 썼다. 담배도 끊어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다시 피우게 됐고 체중도 많이 빠졌다. 금융위 구조조정팀들과 대우조선 관련 은행, 기업과 만나는 자리 마련해서 뭐가 어려운지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우선 2년간의 구조조정이 ‘우리가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손실 분담에 대한 합의를 하고,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원칙대로 한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도 그랬다. 두 번째는 구조조정의 가장 큰 원칙인 이해관계자의 손실 분담에 관한 시장의 인식을 넓힌 것이다.”
▶국민연금이 마지막까지 변수였다.
“당연한 일이고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는 일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노후자금을 관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각 주체들은 최선을 다했다.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결국 자율적으로 합의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조정 환경을 조성하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투명한 절차를 지켜주는 게 정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세 가지를 견지하려 노력했다.”
▶대우조선에 추가지원은 없다는 말을 바꿨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말을 바꾼 건 맞다. 구조조정 방안이 성공하지 못한 것도 맞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당시엔 대우조선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4조2000억원 범위 내에서 구조조정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게 이해관계자나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 결정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는 각오를 갖고서 일했다.”
▶대우조선이 살아나야 구조조정 성공 아닌가.
“그렇다. 구조조정의 절차의 최종 종착지는 주인을 찾아주는 거다. 최종 목표는 정상화다. 그런 의미에서 대우조선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대우조선이 끝까지 정상화될 것 같냐, 어떻게 전망하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미래에 그 기업이 살아나느냐를 100% 장담하긴 어렵다. 업종 변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고, 또 그 기업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정상화 노력도 중요하다. 그게 없는 한 정상화는 쉽지 않다.
대우조선, 현대상선 모두 구조조정 속에서 많은 걸 깨달았을 거라고 본다. 채권단이나 금융당국이 져야 하는 부담도 결코 가볍지 않다. 국민들이 여기까지 허락해주신 것은 굉장히 큰 배려이자 양보다. 이를 잊고 다시 방만하게 돌아간다든가 내부적인 자구 노력을 소홀히 하면 그것은 국민들께 큰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정책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청와대가 참여하거나 개입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엔 서별관 회의 논란이 있었다. 청와대는 향후 이런 중요 의사결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관여해야한다고 보나.
”청와대 관여 여부는 일선 현장에 뛰는 공무원에게 굉장히 큰 다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있다는 것은 어딘가 기댈 데가 있다는 거다. 자기의 결정에 대해 누군가 확인해준다는 의미다. 현장을 뛰는 공무원들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편한 입장이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 한 군데를 더 거쳐야 하고, 설득해야 하는 측면에선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자기가 지휘를 받아야 하는 리더십이 있다는 것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움이 된다고 본다. 조정해주고 통제해주는 청와대의 기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으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구조조정은 채권단, 정부의 산업적 판단, 정무적 판단 등 세 가지가 모여 이뤄지는 것이다.”
▶구조조정 원칙은 무엇인가.
“기업구조조정 방식이 훨씬 다양해져야 한다. 종전처럼 워크아웃 등으로 작동하겠지만 P플랜(초단기 법정관리)이나 사모펀드(PEF)를 통한 구조조정 등 다양한 방안이 활성화돼야 한다. 기업의 형태나 부채구조, 기업 전망 등에 맞춰서 구조조정 방안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특히 법원과 시장이 중심이 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앞으로 이 방식으로 구조조정의 틀이 바뀔 거다. 최근 내놓은 ‘신 구조조정 방안’이 그렇다. 물론 이를 운영하는 것은 다음 정부의 몫이다.”
▶한진해운 구조조정과 관련해 ‘최순실 국정농단’의 영향이 있다는 식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진실은 무엇인가.
“내 명예를 걸고 얘기하는데, 한진해운의 문제에 있어서 최순실과 연관된 건 없었다. 한진해운 문제는 이렇게 봐야 한다. 일단 일관된 원칙에 의해 한진해운을 처리했다. 한진해운에 주주, 채권자, 채권은행 등이 각기 손실 분담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차례 강조했다. 한진은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인하 협상에 진척이 없었고, 사채권자나 은행의 채무재조정에는 가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현대상선과 대우조선과는 상황이 달랐다.
더구나 한진해운은 당시 배를 띄울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한진해운 스스로의 경쟁력이 있었느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노하우나 네트워크 같은 경쟁력이 없었다. 한진해운 문제를 정치 문제와 엮는다든지, 금융논리로만 처리했다는 지적은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런 부분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는 측면에서 금융당국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도 해본다.
다만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인한 물류대란은 문제였다. 물류대란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처리가 완전하지 못했다. 부족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바다 위 화물 등 물류 문제를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는 점을 공부했고 깨달았다.”
▶올해가 외환위기 20년, 글로벌 금융위기 10년이 되는 해다. 한국 금융시스템이나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어떤가. 점수로 치면 몇 점 정도 주고 싶나.
“건전성 같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의 금융사들의 상황은 괜찮은 편이다. 내가 직접 민간에 가보니까 훨씬 높은 수준이더라. 금융회사는 굉장히 건전해졌고 리스크를 인식하는 능력도 높아졌다. 금융회사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금융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정도를 너무 지나쳐서 어떤 폐단이 나타났다. 금융회사가 취해야 할 리스크를 피하는 보수적 형태의 영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 음양의 문제랄까. 이 두 번째가 오히려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은행의 기본적인 모습은 물론 증권사나 다른 금융권에 비해 안정적이고 권위적이어야 하지만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한다. 그게 곧 수익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리스크 테이킹은 1)기업 금융에 대해 보다 활발히 하는 문제 2)해외진출을 통해 수익률을 다변화하는 것. 3) 중금리 대출과 같이 은행이 1~3내지 우량 등급만 취급하고 나머지는 보지 않는 의식을 깨는 것이다. 은행의 전략이나 모습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많은 기대를 한다. 메기 효과다. 그동안 은행의 보수적인 영업형태를 깨는 변화가 될 거라고 본다. 지금 은행들은 수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해서 수학공부만 하니까 영어 국어가 약해진 거나 마찬가지 상황에 있다. 점수는 금융당국이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80점 이상이라고 본다. 다만 80점 만들기 위해서 진보가 없었다. ”
▶일부 금융그룹에 대해선 더 높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글쎄요. 그런 건전성에 관한 지표나 규제같은 것은 딱 하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기준에만 맞추면 된다. 우리 만의 별도 기준은 필요 없다. 이중적이고 중복적인 규제는 안 된다고 본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쫓아가는 것만해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규제는 영업, 건전성, 금융소비자 규제, 시장질서 규제 등 네 가지 틀인데 그 가운데 건전성 규제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글로벌하게 확인되고 통용되는 기준만 지키면 된다.”
▶금융정책이 기획재정부에 들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선.
“좋은 질문이시다. 저는 현재의 금융행정 시스템이 바뀌어선 안 된다고 본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1)지금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붙여도 보고 집중도 시켜보고 했다. 과연 안 해본 게 있었나. 금감위 재경부로 나눠도 봤다. 지금은 다시 금융위로 붙였고.. 안 해본 것이 없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2)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 차기 정부가 곧 출범한다. 그런데 이것을 고치려면 모든 기관들이 달려들어서 논쟁과 힘을 쏟아야 한다. 금융위 재정부 등 모든 기관이 달려들어서 금융감독 체제를 바꾸자고 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는 줄 모르고 감독권 문제 가지고 기관들끼리 다투고 국회만 쫓아다녔다. 새 정부는 바로 출범해야 하는데 그걸 논의하기에 적절치 않다. 3) 시기적인 문제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다. 가계부채 문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르면 시장 안전 문제,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대응 등이다. 공무원들은 조직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조직개편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개월이 걸린다. 이 위중한 시기에 그 문제에 매달려야 하나. 그렇지 않다. 정부조직에 대한 조정은 있어야겠지만 지금 건드릴 타이밍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또 금융정책과 감독을 분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책과 감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신규 인가를 내준다고 하면 그게 감독이냐 정책이냐. 그 회사가 건전하게 과연 들어가서 살 수 있을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평가하는 것이라면 감독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독과 정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느냐고 하는데, 오히려 둘이 밟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이 밟아야 한다. 분리한다고 두부 자르듯이 잘라지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감당해야 조화로울 수 있다고 본다. ”
▶가계대출 문제는 결국 통화 정책으로만 해야 하는 게 아니냐.
“가계부채는 결코 금융 측면에서 조절되는 게 아니다. 금융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게 뭔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고 처음부터 갚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가계부채 위험성을 줄이는 일이지 본질적 해결책은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를 접근하기 전에 현재 상황을 보자.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현금 유동성이 쌓이고 있다. 자금 잉여다. 정부 재정 수치도 잉여다. 가계만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가 되고 있다. 본질적인 해법은 기업과 정부의 잉여를 가계 쪽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를 해서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재정확대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 두가지를 통해 부채 문제를 풀어야지 가계부채 해법을 금융에서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성장, 복지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가계부채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가계부채가 왜 늘었나도 봐야 한다. 원인은 1)저금리 2)부동산 3)규제완화 등 세 가지다. 그런데 금융위의 대응은 1)빌릴만큼만 갚아라 2)처음부터만 갚아라는 것이다. 문제와 방법이 상응하지 않는다. 경제 주체들 같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서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
▶서민금융 지원은 어디까지 해야 하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쉽진 않다. 적어도 금융개혁 차원에서 두 가지는 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서민 취약계층이 찾을 수 있는 금융 네트워크를 만들어놨다. 서민금융진흥원이란 기관을 만들었다. 전국에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36개도 만들었는데 앞으로 100개까지 늘릴 것이다. 서민들은 금융을 이용하기 위해 어디로 가야할 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회사, 저 회사 찾아다닐 여유도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니까..두번째는 중금리 대출을 늘린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은 신용 1~3 등급을 위한 은행권, 거길 이용하지 못하는 나머지 소비자들은 20% 이상의 고금리를 물면서 저축은행, 대부업체으로 가야 한다. 금리단층 현상이다. 이게 서민들을 어렵게 만든다. 한가지더 자영업자도 문제다. 자영업자들에게 금융지원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건 마치 전세자금과 같다. 자영업자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다. 그저 줄여나간다고만 해결되는 게 아니다. 공급을 꾸준히 해야 한다. 다만 공급을 통해 빌려준 자금이 사업실패 등으로 회수불능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돌보는 게 필요하다. 컨설팅 등 다른 지원책까지 섞어서 추진해야 한다.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위 제도를 정비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서민들을 위해 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임 위원장은 가계부채 문제 외에도 기업 구조조정, 정부 조직개편,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수익성, 서민층 금융지원 방안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1시간30분가량 소신을 밝혔다. 한국경제신문은 박준동 금융부장과 이태명·정지은 기자가 인터뷰에 나섰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대우조선 하면서 체중이 4㎏은 빠진 것 같다. 졸업 작품이어서 그런지 신경을 많이 썼다. 담배도 끊어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다시 피우게 됐고 체중도 많이 빠졌다. 금융위 구조조정팀들과 대우조선 관련 은행, 기업과 만나는 자리 마련해서 뭐가 어려운지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우선 2년간의 구조조정이 ‘우리가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손실 분담에 대한 합의를 하고,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원칙대로 한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도 그랬다. 두 번째는 구조조정의 가장 큰 원칙인 이해관계자의 손실 분담에 관한 시장의 인식을 넓힌 것이다.”
▶국민연금이 마지막까지 변수였다.
“당연한 일이고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는 일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노후자금을 관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각 주체들은 최선을 다했다.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결국 자율적으로 합의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조정 환경을 조성하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투명한 절차를 지켜주는 게 정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세 가지를 견지하려 노력했다.”
▶대우조선에 추가지원은 없다는 말을 바꿨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말을 바꾼 건 맞다. 구조조정 방안이 성공하지 못한 것도 맞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당시엔 대우조선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4조2000억원 범위 내에서 구조조정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게 이해관계자나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 결정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는 각오를 갖고서 일했다.”
▶대우조선이 살아나야 구조조정 성공 아닌가.
“그렇다. 구조조정의 절차의 최종 종착지는 주인을 찾아주는 거다. 최종 목표는 정상화다. 그런 의미에서 대우조선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대우조선이 끝까지 정상화될 것 같냐, 어떻게 전망하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미래에 그 기업이 살아나느냐를 100% 장담하긴 어렵다. 업종 변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고, 또 그 기업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정상화 노력도 중요하다. 그게 없는 한 정상화는 쉽지 않다.
대우조선, 현대상선 모두 구조조정 속에서 많은 걸 깨달았을 거라고 본다. 채권단이나 금융당국이 져야 하는 부담도 결코 가볍지 않다. 국민들이 여기까지 허락해주신 것은 굉장히 큰 배려이자 양보다. 이를 잊고 다시 방만하게 돌아간다든가 내부적인 자구 노력을 소홀히 하면 그것은 국민들께 큰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정책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청와대가 참여하거나 개입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엔 서별관 회의 논란이 있었다. 청와대는 향후 이런 중요 의사결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관여해야한다고 보나.
”청와대 관여 여부는 일선 현장에 뛰는 공무원에게 굉장히 큰 다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있다는 것은 어딘가 기댈 데가 있다는 거다. 자기의 결정에 대해 누군가 확인해준다는 의미다. 현장을 뛰는 공무원들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편한 입장이다.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 한 군데를 더 거쳐야 하고, 설득해야 하는 측면에선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자기가 지휘를 받아야 하는 리더십이 있다는 것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움이 된다고 본다. 조정해주고 통제해주는 청와대의 기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으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구조조정은 채권단, 정부의 산업적 판단, 정무적 판단 등 세 가지가 모여 이뤄지는 것이다.”
▶구조조정 원칙은 무엇인가.
“기업구조조정 방식이 훨씬 다양해져야 한다. 종전처럼 워크아웃 등으로 작동하겠지만 P플랜(초단기 법정관리)이나 사모펀드(PEF)를 통한 구조조정 등 다양한 방안이 활성화돼야 한다. 기업의 형태나 부채구조, 기업 전망 등에 맞춰서 구조조정 방안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특히 법원과 시장이 중심이 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앞으로 이 방식으로 구조조정의 틀이 바뀔 거다. 최근 내놓은 ‘신 구조조정 방안’이 그렇다. 물론 이를 운영하는 것은 다음 정부의 몫이다.”
▶한진해운 구조조정과 관련해 ‘최순실 국정농단’의 영향이 있다는 식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진실은 무엇인가.
“내 명예를 걸고 얘기하는데, 한진해운의 문제에 있어서 최순실과 연관된 건 없었다. 한진해운 문제는 이렇게 봐야 한다. 일단 일관된 원칙에 의해 한진해운을 처리했다. 한진해운에 주주, 채권자, 채권은행 등이 각기 손실 분담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차례 강조했다. 한진은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인하 협상에 진척이 없었고, 사채권자나 은행의 채무재조정에는 가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현대상선과 대우조선과는 상황이 달랐다.
더구나 한진해운은 당시 배를 띄울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한진해운 스스로의 경쟁력이 있었느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노하우나 네트워크 같은 경쟁력이 없었다. 한진해운 문제를 정치 문제와 엮는다든지, 금융논리로만 처리했다는 지적은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런 부분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는 측면에서 금융당국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도 해본다.
다만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인한 물류대란은 문제였다. 물류대란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처리가 완전하지 못했다. 부족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바다 위 화물 등 물류 문제를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는 점을 공부했고 깨달았다.”
▶올해가 외환위기 20년, 글로벌 금융위기 10년이 되는 해다. 한국 금융시스템이나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어떤가. 점수로 치면 몇 점 정도 주고 싶나.
“건전성 같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의 금융사들의 상황은 괜찮은 편이다. 내가 직접 민간에 가보니까 훨씬 높은 수준이더라. 금융회사는 굉장히 건전해졌고 리스크를 인식하는 능력도 높아졌다. 금융회사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금융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정도를 너무 지나쳐서 어떤 폐단이 나타났다. 금융회사가 취해야 할 리스크를 피하는 보수적 형태의 영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 음양의 문제랄까. 이 두 번째가 오히려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은행의 기본적인 모습은 물론 증권사나 다른 금융권에 비해 안정적이고 권위적이어야 하지만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한다. 그게 곧 수익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리스크 테이킹은 1)기업 금융에 대해 보다 활발히 하는 문제 2)해외진출을 통해 수익률을 다변화하는 것. 3) 중금리 대출과 같이 은행이 1~3내지 우량 등급만 취급하고 나머지는 보지 않는 의식을 깨는 것이다. 은행의 전략이나 모습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많은 기대를 한다. 메기 효과다. 그동안 은행의 보수적인 영업형태를 깨는 변화가 될 거라고 본다. 지금 은행들은 수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해서 수학공부만 하니까 영어 국어가 약해진 거나 마찬가지 상황에 있다. 점수는 금융당국이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80점 이상이라고 본다. 다만 80점 만들기 위해서 진보가 없었다. ”
▶일부 금융그룹에 대해선 더 높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글쎄요. 그런 건전성에 관한 지표나 규제같은 것은 딱 하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기준에만 맞추면 된다. 우리 만의 별도 기준은 필요 없다. 이중적이고 중복적인 규제는 안 된다고 본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쫓아가는 것만해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규제는 영업, 건전성, 금융소비자 규제, 시장질서 규제 등 네 가지 틀인데 그 가운데 건전성 규제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글로벌하게 확인되고 통용되는 기준만 지키면 된다.”
▶금융정책이 기획재정부에 들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선.
“좋은 질문이시다. 저는 현재의 금융행정 시스템이 바뀌어선 안 된다고 본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1)지금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붙여도 보고 집중도 시켜보고 했다. 과연 안 해본 게 있었나. 금감위 재경부로 나눠도 봤다. 지금은 다시 금융위로 붙였고.. 안 해본 것이 없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2)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 차기 정부가 곧 출범한다. 그런데 이것을 고치려면 모든 기관들이 달려들어서 논쟁과 힘을 쏟아야 한다. 금융위 재정부 등 모든 기관이 달려들어서 금융감독 체제를 바꾸자고 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오는 줄 모르고 감독권 문제 가지고 기관들끼리 다투고 국회만 쫓아다녔다. 새 정부는 바로 출범해야 하는데 그걸 논의하기에 적절치 않다. 3) 시기적인 문제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다. 가계부채 문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르면 시장 안전 문제,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대응 등이다. 공무원들은 조직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조직개편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개월이 걸린다. 이 위중한 시기에 그 문제에 매달려야 하나. 그렇지 않다. 정부조직에 대한 조정은 있어야겠지만 지금 건드릴 타이밍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또 금융정책과 감독을 분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책과 감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신규 인가를 내준다고 하면 그게 감독이냐 정책이냐. 그 회사가 건전하게 과연 들어가서 살 수 있을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평가하는 것이라면 감독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독과 정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느냐고 하는데, 오히려 둘이 밟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이 밟아야 한다. 분리한다고 두부 자르듯이 잘라지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감당해야 조화로울 수 있다고 본다. ”
▶가계대출 문제는 결국 통화 정책으로만 해야 하는 게 아니냐.
“가계부채는 결코 금융 측면에서 조절되는 게 아니다. 금융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게 뭔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고 처음부터 갚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가계부채 위험성을 줄이는 일이지 본질적 해결책은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를 접근하기 전에 현재 상황을 보자.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현금 유동성이 쌓이고 있다. 자금 잉여다. 정부 재정 수치도 잉여다. 가계만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가 되고 있다. 본질적인 해법은 기업과 정부의 잉여를 가계 쪽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를 해서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재정확대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 두가지를 통해 부채 문제를 풀어야지 가계부채 해법을 금융에서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성장, 복지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가계부채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가계부채가 왜 늘었나도 봐야 한다. 원인은 1)저금리 2)부동산 3)규제완화 등 세 가지다. 그런데 금융위의 대응은 1)빌릴만큼만 갚아라 2)처음부터만 갚아라는 것이다. 문제와 방법이 상응하지 않는다. 경제 주체들 같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서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
▶서민금융 지원은 어디까지 해야 하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쉽진 않다. 적어도 금융개혁 차원에서 두 가지는 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서민 취약계층이 찾을 수 있는 금융 네트워크를 만들어놨다. 서민금융진흥원이란 기관을 만들었다. 전국에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36개도 만들었는데 앞으로 100개까지 늘릴 것이다. 서민들은 금융을 이용하기 위해 어디로 가야할 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회사, 저 회사 찾아다닐 여유도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니까..두번째는 중금리 대출을 늘린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은 신용 1~3 등급을 위한 은행권, 거길 이용하지 못하는 나머지 소비자들은 20% 이상의 고금리를 물면서 저축은행, 대부업체으로 가야 한다. 금리단층 현상이다. 이게 서민들을 어렵게 만든다. 한가지더 자영업자도 문제다. 자영업자들에게 금융지원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건 마치 전세자금과 같다. 자영업자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다. 그저 줄여나간다고만 해결되는 게 아니다. 공급을 꾸준히 해야 한다. 다만 공급을 통해 빌려준 자금이 사업실패 등으로 회수불능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돌보는 게 필요하다. 컨설팅 등 다른 지원책까지 섞어서 추진해야 한다.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위 제도를 정비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서민들을 위해 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