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상조 교수를 지명하자 경제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지난 20년간 줄기차게 ‘재벌개혁’을 외쳐온 대표적인 ‘재벌 저격수’여서다. 하지만 그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구상을 보면 맹목적인 원리주의자는 분명 아닌 듯하다. 오히려 세계 경제 변화를 수용하는 현실성과 유연성이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개혁 의지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다”면서도 “재벌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며 해체하려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럼에도 경제계 우려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조직과 역할이 대폭 확대된 ‘슈퍼 공정위’를 맞게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정위를 전면 개혁해 ‘재벌 갑질’과 경제 적폐를 근절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경제수장(부총리)보다 먼저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한 건 그런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도 했다. 공정위는 대기업을 전담할 ‘조사국(기업집단국)’을 12년 만에 부활시키기로 했다. 경쟁제한, 담합 억제 위주인 선진국 경쟁당국과 달리 기업 출자구조와 내부거래까지 규제하는 공정위는 더욱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됐다.

새 정부는 공정위를 앞세워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할 태세다. 김 후보자는 4대 그룹에 더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해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력 집중에 대한 오해와 오독(誤讀)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4대 그룹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견뎌냈기에 이만큼 커졌다. 해외 매출이 80%가 넘는 대기업들을 ‘국내’라는 울타리로 한정해 경제력이 집중됐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기업을 둘러봐도 지배구조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혁은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 김 후보자도 “재벌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경제활력을 되살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기업을 옥죄기보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오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공정위의 역할이 돼야 마땅하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10개, 20개 나올 수 있다면 ‘일자리 정부’로 평가받을 것이다. 규제만능주의가 아닌, 기업 키우는 ‘김상조 공정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