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본격 펼칠 움직임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남북 관계가 단절된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며 “실무급 차원부터 대화를 한번 시도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5·24 대북 제재는 해제해야 한다”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을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역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민간 교류 등을 유연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 자체를 원론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류 협력 그 자체가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재개하고 어떻게 지속하느냐다. 우선 남북 관계가 왜 단절됐는지부터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5·24 조치는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조치로 나온 대북 제재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관광객 피살로 중단됐고, 개성공단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2016년 폐쇄됐다. 모두가 북한 측 도발의 결과다.

북한은 이런 도발에 대해 인정도, 사과도 한 적이 전혀 없다. 게다가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두 번이나 미사일을 쏘며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런 북한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먼저 나서 화해 제스처를 취하는 게 적절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5·24 조치 해제는 천안함 폭침이 남측 자작극이라는 북측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무력 위협을 지속하니 남측이 꼬리를 내린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북한은 더욱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쥐고 한국을 배제하려 들 것이다. 이른바 ‘North Korea Initiative’의 현실화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주장해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그런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어설픈 대북 유화책은 자칫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서 한국을 ‘왕따’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국제 사회는 지금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논의 중이다. 그런 와중에 한국이 앞장서 대북 제재를 푼다면 세계는 우리를 어떻게 볼까. 천안함 순국 장병 유가족들은 또 어떤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