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선박 발주한다고 조선업 살아날까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정부의 관공선 입찰이 ‘저가수주’를 유도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주 절벽에 빠진 조선업체에 일감을 긴급 수혈하겠다는 취지지만 정작 업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조달청을 통해 지난 9일 1500t급 국가어업지도선 2척의 입찰공고를 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일감이 끊긴 조선업체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11조원 규모 재정을 투입해 250척 이상 선박 발주를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정부에 고마움보다는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조달청이 제시한 추정 가격이 화근이다. 이번 입찰공고에는 551억1818만1818원이라는 추정가격이 표기됐다. 조달청은 “과거 낙찰 사례와 정부의 예산 수준을 감안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업계는 추정가격이 출혈경쟁을 부추긴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정부 입찰에 뛰어든 업체들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가이드라인 밑으로 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정부가 덤핑 공세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일반 해운회사가 선박을 발주할 때는 이 같은 이유로 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격 산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조달청은 원가 산정을 위해 설계업체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실제 공사원가보다 추정원가를 산정할 여지가 생긴다. 업계에서는 “턴키 방식(일괄 수주계약)이 아니라 설계, 주요 기자재 공급, 건조 등 공정별로 세분화돼 입찰이 이뤄지기 때문에 설계업체들은 발주처인 정부에 유리하도록 가격을 낮출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금융권의 엇박자 행보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이뤄진 공공입찰에서 수주 업체가 뒤집힌 사례가 단적인 예다. 당시 부산 중소조선소 마스텍중공업은 최저가를 적어내 해양수산부가 발주한 6척의 어업지도선을 싹쓸이했다. 적격성 심사도 통과했지만 마스텍은 조달청이 요구한 보증서 발급에 실패하면서 낙찰자 지위를 잃었다. 사업 규모에 비해 자기자금 조달 등 사업 수행 능력이 부족해 은행권의 보증서 발급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재입찰을 통해 다른 중소 조선소 두 곳이 일감을 나눠 가졌다.

전문가들은 ‘조선업 살리기’라는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으면 정책 취지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안전을 담보해야 할 관공선 입찰을 가격 위주로 심사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그동안의 조달 관례에서 벗어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