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조선산업 지원이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시작한 일본이 한국 정부에 “과거 10년치 상세 지원 내역을 제출하라”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공적자금 투입 등 굵직한 사업 외에 소규모 지원까지 문제삼겠다는 의도여서 정부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공공기관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한국 정부에 무역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의 조선업계 지원 내역을 묻는 자료 요청서를 보냈다.
통상압박 강도 높인 日 "10년치 지원내역 내라"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질의 내용을 보니 2008년 이후 한국 언론에 나왔거나 보도자료를 발표한 지원 실적을 일일이 거론하며 구체적인 지원 내역을 제출하라고 하더라”며 “자료 요구가 폭탄 수준이어서 곤혹스럽다”고 전했다.

일본이 요구한 자료는 대우조선해양과 STX·성동조선 구조조정 등 잘 알려진 사업 외에 수천만원 수준의 소규모 금융·보조금 지원과 최근 설립된 해양진흥공사 활동까지 망라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공적자금 지원이 공정한 국제 경쟁을 방해하고 자국 기업의 피해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대규모 지원사업은 국제 규범에 어긋나지 않게 각별히 조심하지만 소규모 지원은 주의가 소홀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검증 과정에서 WTO 규범에 어긋나는 정책이 드러나면 일본에 일정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처럼 일본이 통상 압박 강도를 높이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1위를 탈환한 한국 조선산업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물론 최근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으로 통상정책을 활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 신닛테쓰스미킨(新日鐵住金)은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한 지 1주일 만에 WTO 제소를 단행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이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과거 지원사업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는데 국제 규범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일본의 통상 압박으로 한국 정부의 산업정책에 차질이 생길지 모른다는 점이다. 산업부는 지난해부터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조선사 지원 대책을 내놓고 추가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선박 수출에 필수적인 RG는 조선사가 발주처에 선박을 인도하지 못하면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것을 말한다. 무보는 그동안 RG 발급 보증을 보수적으로 운영해왔는데 최근 조선업 지원 필요성이 커지면서 수출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이 워낙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어 정부가 제도 개선을 실행하는 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