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국민을 위한 공공건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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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건축물 중 3%가량인 공공건축물
공공에 봉사하는 가치 인식하게 하고
미래 시민과 함께 '자라는' 건축이어야
김광현 < 서울대 명예교수·건축학 >
공공에 봉사하는 가치 인식하게 하고
미래 시민과 함께 '자라는' 건축이어야
김광현 < 서울대 명예교수·건축학 >
공공건축은 공공청사나 주민센터, 경찰서와 소방서, 학교 도서관 도립예술회관과 같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가 등의 예산으로 짓는 건축물을 말한다. 공공건축물은 매년 4800동이나 생긴다. 전국의 건축물은 연평균 1% 증가하는데 공공건축물은 2.5% 늘어난다. 전국에 있는 건축물 중 공공건축물은 2.86%이며, 그중 국가가 소유한 건축물은 53.6%다. 그러면 과연 어떤 것이 그냥 건축이 아니라 ‘좋은 공공건축’일까.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공공건축을 ‘공공기관이 건축하거나 조성하는 건축물’이라 하고, 공공기관은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는 건물’을 짓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건축하는 것만이 공공건축의 전부가 아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예산을 절감해 경제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공공건축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런 공공건축물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심지어는 적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건물도 적지 않다. 그러니 국가의 명확한 입장이 없는 ‘건축의 공공적 가치’란 자칫 흘려들어도 되는 슬로건 정도로 여기기 쉽다.
2011년 7월 국토교통부의 건축문화경관팀이 좋은 공공건축물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며칠 동안 다듬고 다듬어서 우리나라가 정의하는 공공건축을 이렇게 정리했다. ‘좋은 공공건축은 국민에게서 받은 예산으로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이며, 그 안에서 사용하고 일하는 이들이 그 건물을 통해 공공에 봉사하는 가치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만드는 건축물이고, 나아가 앞으로 사용하게 될 미래의 시민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을 말한다.’ 애석하게도 이 정의는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좋은 공공건축의 공공적 가치는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좋은 초등학교는 국민인 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설계돼 지어지고 운영되는 건물이고, ‘그 건물을 통해 공공에 봉사하는 가치를 깊이 인식하게 하는’ 좋은 치안센터는 그곳에서 일하는 경찰관이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지 인식하게 해주는 건물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지나쳐버리면 공공건축은 결코 다른 건축의 모범이 될 수 없다.
행정이 곧 공공은 아니다. 관행적으로 행정이 공원을 짓고 도로나 다리도 만들어 왔으므로 민간은 공공과 무관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도로나 공원 또는 지하철이 도시의 일부이듯 행정에서 짓고 운영하는 공공건축도 도시의 일부이자 시민의 재산이다. 개인 소유 건물도 주변에 영향을 미치므로 건축의 공공성을 지키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라가 소유한 산이라도 도시 전체로 보면 시민의 것이다. 그러니 행정이 공공성이라는 이유로 민간 건축의 방향을 독점적으로 지도한다고 과신하면 국민을 위한 좋은 공공건축은 지어지기 어렵다.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공공이 집단을 말할지라도, 국민을 위해 지어진다함은 공공건물이 그 집단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독창성을 위한 것임도 뜻하고 있다. 공공건축은 이런 가치를 실천해야 할 의무가 큰 건축물이다. 공공건축이 미술관이라면 그것은 참여하는 개인의 풍부한 개성을 살려주고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공간이 돼야 한다. 또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공공건축은 아이들에게 저 건물은 너희들의 것이고, 따라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는 건물이어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다.
더구나 그 국민에는 새로 태어날 ‘미래의 시민’도 포함된다. 구청사라면 30년 후 지금의 초등학생이 건축주라고 생각하고 지어지는 구청사가 좋은 공공건축이다. 지속가능한 건축이란 에너지를 절약하는 건축이 아니다. 바로 이런 것을 실천하는 건축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건축이다. 그러니 좋은 공공건축이란 공간과 규모를 넘어 ‘시간’을 설계하는 것이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게 한다는 생각을 앞서 보여주는 건축이다.
그렇지만 말이 그렇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회에 대한 공공건축의 책임은 이렇게 크다. 사정이 이러한데 저예산에 편리함도 잘 챙기지 못하는 부실한 공공건축이 아직도 이 시대에 지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공공건축을 ‘공공기관이 건축하거나 조성하는 건축물’이라 하고, 공공기관은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는 건물’을 짓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건축하는 것만이 공공건축의 전부가 아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예산을 절감해 경제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공공건축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런 공공건축물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심지어는 적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건물도 적지 않다. 그러니 국가의 명확한 입장이 없는 ‘건축의 공공적 가치’란 자칫 흘려들어도 되는 슬로건 정도로 여기기 쉽다.
2011년 7월 국토교통부의 건축문화경관팀이 좋은 공공건축물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며칠 동안 다듬고 다듬어서 우리나라가 정의하는 공공건축을 이렇게 정리했다. ‘좋은 공공건축은 국민에게서 받은 예산으로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이며, 그 안에서 사용하고 일하는 이들이 그 건물을 통해 공공에 봉사하는 가치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만드는 건축물이고, 나아가 앞으로 사용하게 될 미래의 시민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을 말한다.’ 애석하게도 이 정의는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좋은 공공건축의 공공적 가치는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좋은 초등학교는 국민인 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설계돼 지어지고 운영되는 건물이고, ‘그 건물을 통해 공공에 봉사하는 가치를 깊이 인식하게 하는’ 좋은 치안센터는 그곳에서 일하는 경찰관이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지 인식하게 해주는 건물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지나쳐버리면 공공건축은 결코 다른 건축의 모범이 될 수 없다.
행정이 곧 공공은 아니다. 관행적으로 행정이 공원을 짓고 도로나 다리도 만들어 왔으므로 민간은 공공과 무관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도로나 공원 또는 지하철이 도시의 일부이듯 행정에서 짓고 운영하는 공공건축도 도시의 일부이자 시민의 재산이다. 개인 소유 건물도 주변에 영향을 미치므로 건축의 공공성을 지키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라가 소유한 산이라도 도시 전체로 보면 시민의 것이다. 그러니 행정이 공공성이라는 이유로 민간 건축의 방향을 독점적으로 지도한다고 과신하면 국민을 위한 좋은 공공건축은 지어지기 어렵다.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공공이 집단을 말할지라도, 국민을 위해 지어진다함은 공공건물이 그 집단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독창성을 위한 것임도 뜻하고 있다. 공공건축은 이런 가치를 실천해야 할 의무가 큰 건축물이다. 공공건축이 미술관이라면 그것은 참여하는 개인의 풍부한 개성을 살려주고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공간이 돼야 한다. 또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공공건축은 아이들에게 저 건물은 너희들의 것이고, 따라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는 건물이어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다.
더구나 그 국민에는 새로 태어날 ‘미래의 시민’도 포함된다. 구청사라면 30년 후 지금의 초등학생이 건축주라고 생각하고 지어지는 구청사가 좋은 공공건축이다. 지속가능한 건축이란 에너지를 절약하는 건축이 아니다. 바로 이런 것을 실천하는 건축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건축이다. 그러니 좋은 공공건축이란 공간과 규모를 넘어 ‘시간’을 설계하는 것이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게 한다는 생각을 앞서 보여주는 건축이다.
그렇지만 말이 그렇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회에 대한 공공건축의 책임은 이렇게 크다. 사정이 이러한데 저예산에 편리함도 잘 챙기지 못하는 부실한 공공건축이 아직도 이 시대에 지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