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간 외길 기능인생 .. 두원중공업 박성대과장

약관 16세때부터 시작한 두원중공업 생산1과장 박성대씨(44)의 기능인생은 올해 28년째를 맞는다. 그의 기능인생은 구닥다리 일제기계를 만지면서 시작됐다. 아직도 일제기계가 많이 판치는 현실이지만 국내 기계공업의 성장세에남다른 감회를 느낀다. 가난을 떨쳐버리려 첫발을 내디딘 그의 기능인생길은 고단했지만 이제는2백여명의 부하직원을 데리고 있는 중간관리자가 돼있다. 단칸방을전전하던 시절이 옛추억이 됐고 이제는 진주시내에 27평짜리 연립주택과자가용까지 마련했다. 그가 기능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6세때인 64년. 진주가 고향으로 3남1녀의 장남인 그는 8세때 부친이 사망,어머니의 남의집 날품팔이로 어렵사리 중학교까지 마칠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진학권유를 뿌리치고 사관학교를 나와 장군이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 "기술을 배워 남에게 지지 않겠다"는 어린고집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찾아간 곳은 두원중공업의 전신인 대동공업. 이회사는 48년 설립된농기계메이커로 진주는 물론 경남최대의 제조업체로 당시 꼽히고 있었다. 기술을 배울때의 어려움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2년동안은 선배들보다 한시간 먼저 출근,기계에 윤이 반드르르 날 정도로청소를 했는가 하면 겨울에는 선배들의 도시락을 데워놓으며 부지런함을보여야했다. 그의 기술탐구는 이렇게 어렵게 시작됐던것. 그러나 또다른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았다. 도면을 보고 이를 근거로가공을 해야했으나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졸사원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삼각함수부터 시작,필요한 지식을쌓아갔다. 지난 83년 일본구보다사 연수를 계기로 일본어 공부도 꾸준히 해 이젠일본관련서적을 보거나 간단한 회화도 가능하다. 지금 그는 판금 금형 치공구 조립 기계가공 열처리등 생산현장에서 필요한대부분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로부터 78년 기능장,89년에는 최고영예인 기공장자격을 부여받았다.지난해 정부로부터 "명장"품위를 받은 것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고동료들은 말하고 있다. 그의 진가가 본격발휘된 것은 70년대초반 국내 방위산업이 태동하면서부터. 이때부터 대동공업은 방위산업에 참여했는데 그는 72년 첨단방산제품가공기술자로 발탁돼 1백5 및 1백55 한국형곡사포개발에 숨은 주역이된다. 유기압식 주뢰복좌기 정밀가공기술을 개척하고 양산공정의 기틀을마련했다. 시험발사때 군관계자들이 외제가 아니냐고 감탄했던 것이 이젠 동료들과의술자리에서 안주감이 되고있다. 그는 이밖에도 박격포용 사격통제장비 다목적 장갑차제조기술을 한단계높여놓는등 자주국방의 한가운데 서있다. 지금은 첨단장비인 CNC머시닝센터개발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기술에 대한 정열과 능력을 높이 산 회사측은 지난해 6월 창사이래 처음현장출신인 그를 과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때부터 그의 부서는 80%를 밑돌던 생산성이 95%까지 오르는등 그의"현장노하우"의 결실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일로"라는 말을자주한다. 그의 28년 기능인생이 그렇듯 한우물 파며 열심히 배우는 자세를 강조하는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