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1) 전격실시 배경과 파장..경제상황 정면돌파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사전 예고없이 전격 실시키로 한 것은 최근의어려워진 경제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시도로 볼수 있다. 새정부는 출범이후 줄곧 현대통령 임기내에 "반드시 실시하겠다"고만약속했으나 더 이상 늦출수 없다고 판단,"조기 전격실시"를 택한 것으로보인다.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 실명제는 최대의 정치현안으로 등장했다.김영삼대통령도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실시해야한다는게 경제팀의 지상명령이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실명제의 실시 시기와 방법은 사전 예고를 할수 없는게 사실이다.구체적인 실시일정을 사전에 밝힐 경우 금융시장에 극도의 혼란이 일고자금이 해외로 도피하는 부작용을 피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경식부총리도"실명제 실시가 사전에 논의될 경우 극심한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에긴급명령에 의해 우선 실시한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5공과 6공때 실시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것도 바로 이런 혼란을 감당할수 없었던데다기득권층의 반발이 컸던 탓이다. 이같은 혼란을 무릅쓰고 8월을 실시시기로 택한 것은 지금이 가장충격이작은 시기라는게 정부측 설명이다. 홍재형재무부장관은 "8월이금융거래가 가장 한가한 달"이라고 말했다. "목욕탕수리를 손님이 없는여름에 하듯 개혁도 경제가 바닥에 있을때 해야한다"는 말과도 통하는얘기다. 정부가 대통령 긴급명령이라는 충격적인 조치를 동원한 것도 결국경제전반의 혼란을 최소화하기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수 있다.기존의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은 실명제 실시 이후에도 비실명자산을비실명으로 인출할수 있도록 무기한 허용하고 있어 그대로 시행할수없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전격실시를 결정한 데는 민자당의 건의도 중요한 역할을 한것으로알려지고 있다. 최근 민자당의 서상목제1정책조정실장은 실명제조기실시를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자당측은 대구 춘천보선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실명제 실시가 정국 타개에도 도움이될것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풀이할수 있다. 실명제가 전격 실시됨에 따라 지금까지의 금융거래 관행은 큰 변화가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가명이나 차명의 금융거래가 일절 금지된다. 기존금융거래자들도 오늘 첫거래부터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야하고 실명을확인하기 전에는 지급이 금지된다. 더군다나 기존의 비실명금융자산도 2개월 이내에 실명으로 전환하도록함으로써 비실명예금에 대한 경과기간도 가능한한 최단기간을 선택했다.다만 최고 5천만원까지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지금까지 거론돼온 3단계 실시론보다도 강도가 더 높다고 볼수 있다. 이처럼 강력한 방법을 취한 것은 실명제 실시로 야기되는 부작용을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제도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이이탈해 지하음성자금화하는 것을 막아 금융기관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것이다. 또 금융실명제가 적용되는 금융기관에 예외를 두지 않은 것도 같은맥락이다.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은 하위금융기관으로 자금이 흐르는 것을방지한다는 복안이다. 실제 일본의 경우 지난 80년 실명제도입이 결정된이후 예금자관리가 허술한 우편예금으로 자금이 급격히 이동한 적이있었다. 금융실명제의 성패는 결국 이같은 혼란을 최소화할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자금이동의 혼란만이 아니다. 금융권에서 이탈한 자금은 금융권을 혼란에빠뜨릴수 있을 뿐 아니라 부동산등 실물투기를 부추기고 해외유출과과소비유발등 연쇄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투기혐의자에 대해 일제히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오늘 이후 부동산 거래분에대해 예외없이 자금출처를 조사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부동산투기의 재발이우려되는 탓이다. 또 3천달러 이상의 해외송금자명단을 특별관리하고 해외부동산 취득자에대해 조사하기로 한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시도 예외는 아니다. 예금이자에 대한 종합과세를 96년부터 실시하는것과는 달리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차기정부로 넘긴 것도 증권시장침체를 막겠다는 취지다. 금융시장의 혼란보다 더큰 문제는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없다는점이다. 당장 사채시장에 의존해온 다수의 중소기업들이자금경색으로 마비상태에 빠질수도 있다. 한은이금융시장안정비상대책반을 두어 자금을 특별지원하고 신용보증한도를 2배로늘린다는 계획이나 그 효과는 미지수이다. 금융실명제는 지하경제의 근원을 제거하고 실명거래의 관행을정착시키는데 본래의 목적이 있다. 그래서 선진경제로 가기위해 반드시넘어야할 문턱이기도 하다. 실명제가 되지않는한 금융자산에 대한종합과세도 불가능하고 조세부담의 공평성도 이룰수 없는게 사실이기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을 싫어한다"는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최소화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둬 신경제의 기반을 마련할수 있을지는 정부의세밀한 후속조치와 경제계의 협조에 기대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