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의 전화..유화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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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말 프랑스 혁명기때 파리코뮨등 혁명정치를 주도했던 로베스피에르는 우유값을 생산비 이하로 묶어버리고 이를 어기면 단두대로 보냈다.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한 그의 우유가격정책은 초기엔 일단 성공을거두는듯 했다. 그러나 최종결과는 영 기대밖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낙농가들은 젖소를 도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유공급의 절대량이 줄어들 수 밖에. 공급이 줄어든 이유를 묻는 로베스피에르에게 낙농업자들은 건초값이 너무비싸 수지를 맞출수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이번엔 건초값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자연히 건초밭이 사라지면서 젖소들에게 먹일 풀의 품귀현상까지 나타났다. 결국은 아이들이 먹을 우유조차 구하기 힘들게 됐다고 한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게 내놓는 정부의 물가대책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게 로베스피에르식 가격정책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산품값에는 으레 "동결"이라는 단어가 따라붙고 서비스요금은 "환원일색"이다. 또 어떤 가격은 대책없이 "연기 조치"만 내려지고 있다.말로 통화가치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중앙은행총재는 어느자리에 앉아있는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내무부장관 국세청장만이 유난히 클로즈업돼 있다. 이는 좋게 말하면 물가만은 행정력을 총동원해서라도 잡겠다는 뜻일게고 나쁘게 보면 "올리면 죽인다"는 현대판 단두대같은 느낌을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문제의 핵심은 왜 이같은 물가정책이 나오고 있느냐는 점이다.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마다에 유독 물가정책에서만 구태를 벗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어느 원로경제학자는 그 원인이 여론을 너무 의식한 정부정책에 있다고진단한다. 정부는 이런 지적에 대해 천부당만부당하다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통령이지난달 25일 취임1주년 기자회견에서 문민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집권초기90%대에서 최근 60%대로 떨어진것을 두고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게다. 여론이 어떻든 할것은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액면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물가정책만은 아닌것 같다. 대통령은 회견을 며칠 앞두고 경제부총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물가대책을 지시했고,청와대 대변인은 이 사실을 즉시 언론에 알렸고,부총리는 지시를 받자마자 "긴급"이란 접두어를 붙여 물가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무엇이든 내놔야한다는 "여론정책"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하기야 물가도 여론정책으로 다스릴 수는 있다. 추상같은 개혁정책을 추진해온 지난1년에 비춰본다면 대통령의 약속대로 물가도 반드시 잡을 수 있을게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가격정책처럼 적어도 올 한햇동안은 가시적인 성과가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물가의 속성이다. 물가는 흔히 용수철에 비유된다. 상승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한 누르는 힘이 조금이라도 약해질라치면 다시 튀어오르는게 물가다. 한끼 굶었다고 다음 식사때 두끼분을 한꺼번에 먹을 수 없는 밥하고는다르다. 물가가 한꺼번에 올라서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일시적인 물가억제는 부작용을 낳고 부작용은 경제를 구조적으로 왜곡시켜 더 큰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73년의 물가정책이다. 전년도 8.3조치로 돈이 많이 풀려 물가불안이 가중되던 그해 정부는 3%이내 물가억제를 장담했고 그 장담은 소비자물가 3. 3%상승이란 결과로 적중했다. 그렇지만 그 이듬해부터 물가는 스프링이 됐다. 제1차 오일쇼크가 겹치긴했지만 74년엔 24.3%, 75년엔 25.4%의 물가폭등세가 연출됐다. 과거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학습효과"는 분명하다. 행정력을 동원해 개별물가를 때려잡는 정책은 금방 한계에 부닥친다는 것이다. 설령 김영삼정부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5년내내 물가를 잡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래서 임기동안 인기를 유지한다고해도 문제는 남는다. 김영삼정부가 집권후 대부분의 경제사회적 폐해를 "6공때문에"라고 돌렸듯이 물가안정이라는 짐을 넘겨받은 차기정부도 "김영삼정부의 물가정책때문에"라고 탓할지 모른다. 그건 또 먼훗날 얘기라고 치더라도 작금의 물가정책은 현정부가 "절대선"으로 내세우고 있는 규제완화와도 정면 배치된다. 이렇게보면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는 약속은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물가현실화"를 소신있게 외치던 부총리가 전화 한통화에 복지부동의무소신장관으로 전락해버리는 상황에선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가격정책이수입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일은 점점 꼬이고 만다. 올해는 물가가 다소 오르더라도 다같이 참자며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는쪽으로 나서는게 어떨까. 여론으로 풀어갈수 없는게 경제정책일진대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달아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울것같지 않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