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541) 제3부 정한론

그 무렵부터 벌써 메이지 신정부에서는 비단 조선국뿐 아니라, 청국과러시아 쪽에도 밀정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 육군장교인 이케노 우에시로라는 자는 국제상인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혼자 청국의 상해로 해서 만주로 들어갔고, 기어이 러시아 땅으로까지 잠입해서 정탐을 하고 다녔다. 일급 밀정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그처럼 주변국에 대하여 그 실정을 파악하려고 촉수를 곤두세우고있었다. 일찍부터 정한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던 터이라 조선국에 대해서는장차의 정벌을 위해서였고, 청국과 러시아에 대하여는 오히려 그 힘을방어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부사의 조치로 동래부 관원들과 일본인 잠상(밀수꾼)들 사이에 긴장관계가 지속되어 나갔다. 특허장 제도를 일방적으로 폐기해 버렸으니,동래부측에서 보면 일본인 무역상은 모두가 잠상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듬해 5월말경 왜관의 정문에 방(방)이 붙었다. 동래부사가 왜관의수문장에게 내린 전령문이었다. 그것을 본 일본인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게 뭐야?" "이거 우리를 모독해도 분수가 있지, 뭐 우리가 일본인이 아니라구?양코배기와 다름이 없다구?" "우리를 밀수꾼이라니, 말이나 돼?" "왜관 출입을 금하다니, 누구 맘대로. 그리고 우리 일본을 무법국이라니,국가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라구.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겠어" 분노가 치솟는 듯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전령문에는 근래에 와서 왜관에 출입하는 일본인들 가운데 두발과 복장이종전과 달리 하이칼라 머리에 양복인 경우가 많으니 그런 자들은 일본인이라기 보다도 양코배기라고 할수 밖에 없으며, 또 타고 오는 배도 점점 이양선이 많아지고 있으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그와같은 무리들은 왜관의 출입을 금하도록 하라,그리고 특허장 없이 함부로 입항을 하는 잠상들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무법국과 다름이 없는 일본의 처사 때문에 앞으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그 점을 왜관의 두령에게 경고하여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왜관의 두령은 히로즈 히로노부였다. 일년전에는 사신으로 파견되어 오기도 했던 외무성 관리인 그가 한달전에 왜관의 책임자로 부임해 와있었다. "우리 일본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군" 그 전령서를 본 히로즈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내뱉었다. 그리고 즉시 본국 외무성에 보고서를 띄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