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한 애호가의 결심..박명자 <갤러리현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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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을 감상하는 일은 쉽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러가듯 뜻만 있으면 언제나 미술품을 감상하러 갈 수 있다. 그러나 미술품을 구입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일단 경제적여유가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설사 여유가 있다고 해도 아무 작품이나 살 수는 없는 까닭이다. 미술품을 구입하려면 누구나 먼저 애정을 갖고 안목을 키워야 한다. 자신이 직접 미술품을 구입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애호가가 소장품을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잘 모른다. 화랑을 시작한 25년전부터 그림을 구입한 애호가 한분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이 여성사업가는 세상사람들이 그림에 거의무관심하던 시절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샀다. 지금같으면 좋은 작품을 팔때는 더러 생색도 냈겠지만 당시로서는 안팔리는그림을 사주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만 경우에 따라 "이 작품은 개인소유보다는 미술관 수장용으로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언젠가는 사회에 환원해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곤 했다. 아울러 자신이 살던 집과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정원관리비와 함께 시에기탁한 미국보스톤의 이사벨라 가드너여사 사설미술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럴때면 그분은 빙긋이 웃으며 그저 그림이 좋아서 살 뿐이라고 답했다. 그분이 몇달전 내게 전화를 했다. 서울교외에 조그마한 미술관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였다. 60이 넘어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조금씩 모은 미술품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어 여기저기 흐트러지게 할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은 상속하되 그림은 미술관재산으로 등록하면 어떻겠느냐고 상의한 결과 가족 모두가 동의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요즘 그분의 결심에 박수를 보내며 이 조그만 미술관의 탄생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