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21) 제3부 정한론 : 원정 (12)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독단적으로 대만 정벌을 계획대로 감행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쓰구미치는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어쩐지 뒤가 당기는 듯했다. 그래서 하루 또 하루 단행을 미루어 오던 그는 어느 날, "그래? 그게 사실이야? 음- 그렇다면 태정관의 연기 결정이 그놈들 때문이로군" 하고 놀라며 어금니를 뿌드득 물었다. 보좌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는데,영국과 미국이 대만 정벌군에 가담하여 나가사키에 와있는 자국인과 함선,그리고 무기,군수물자등일체를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들 나라가 태정관에 압력을 가해서 정벌 자체를 중지시킨게 아니고 무엇인가. "이 빌어먹을 서양놈들이." 쓰구미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버르르 떨며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존황양이 운동에 가담했던 시절의 그 분노가 부글부글 되살아 오르는 듯해서, "오냐 좋다. 그렇다면 우리 힘만으로 해 보일테니, 이놈들 두고봐라" 하고 냅다 내뱉었다. 쓰구미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려 2백명의 병사를 한척의 군함에 실어 선발대로 대만을 향해 출항시켰다. 그 군함은 유코마루였다. 그러니까 삼백년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서 조선국 침공에 나섰던 이래 처음으로 파도를 가르며 해외로 출전하는 첫 군함인 것이었다. 1874년 4월27일의 일이었다. 유코마루가 출항했다는 사실을 안 오쿠마는 당황하여 곧 도쿄의 오쿠보에게 전신으로 보고를 했다. 보고를 받은 오쿠보는 깜짝 놀라며,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출발을 시키다니. 허,이거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오쿠보는 냉철하면서도 한편 성급한 일면도 있어서 당장 자기가 나가사키로 달려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즉시 산조와 이와쿠라를 만나 나가사키의 사태를 설명하고,자신이 직접 현지로 가서 일을 처리하겠다면서,경우에 따라서는 연기를 번복하고 정벌을 단행해야 될지도 모르니,전권을 위임해 달라고 하였다. 두사람은 이의가 있을 턱이 없었다. 불과 두달 전에 사가의 반란을 진압하고 주모자들을 단죄하기 위해서 전권을 위임받아 현지로 갔던 오쿠보는 이번에 또 전권을 손아귀에 쥐고 나가사키로 달려가게 되었다. 혼자서 눈코뜰새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국정을 독단으로 요리해 나가는 셈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