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58) 제3부 정한론 : 강화도앞바다 (23)

구로다도 숙소로 돌아가자 부사인 이노우에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도 결코 심정이 평온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조선군측에서 최소한도 먼저 포격을 가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정도의 양보는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전혀 기대밖이어서 속으로 야, 이것 봐라,만만치 않구나 싶어 일부러 공갈협박조로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하러온게 목적은 아니었다. 수호조약을 체결하여 조선국의 빗장을 열어젖히는게 목적이니,끝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최후수단으로 전쟁을 들먹여야 되는 것인데 첫날부터 그런 말을 서슴없이 입밖에 내어 마치 전쟁이 목적인 것처럼 되어 버렸으니 스스로 외교술의 미숙같은 것이 느껴져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노우에공,내가 말을 좀 지나치게 한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이노우에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지나치다니요. 당연히 할말을 하셨을 뿐입니다" "아, 그래요? 나는 너무 앞질러 말을 해버린게 아닌가 싶었는데." "괜찮습니다. 잘하셨어요. 그렇게 처음부터 위협을 해놓아야 앞으로 회담이 순조로울테니까요. 그리고 구로다 도노께서는 군복을 입으셨으니 그렇게 나가는게 당연하고,나는 평복이니까 좀 부드럽게 나가면 되는 거지요. 강온 양면작전을 쓰는 겁니다" "강온 양면작전이라. 그거 좋구려. 허허허." 이제 심정이 활짝 풀린듯 기분좋게 웃고나서 구로다는 잔을 쭉 비웠다. 그리고 그잔을 이노우에에게 권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여 술기운이 오르자 구로다는 불쑥 제의를 하듯 말했다. "이노우에공,오늘은 말이지 강온 양면작전에 있어서 어차피 강한 쪽으로 나간 터이니,밤에도 한바탕 강한 작전을 펴는게 어떻겠소?" "밤에도 강한 작전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위협을 한 김에 오늘밤에 진짜 무시무시한 위협을 가하자 그거요.간덩이가 서늘해지도록." "아." 이노우에는 대뜸 짐작이 가는듯 잠시 취기가 감도는 눈을 깜짝이며 생각해 보는듯 하더니 대답했다. "좋습니다. 오늘은 구로다 도노의 생각대로 하시지요. 그대신 내일은 부드러운쪽으로 나갑시다. 계속 강하게만 나가면 안되니까요" "좋아요. 좋아. 오늘은 강하게,내일은 부드럽게. 으헛헛허." 매우 재미있다는 듯이 구로다는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