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새파트너] (5) 노조 파워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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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뤼셀=김영규특파원 ]독일 최대노조인 금속노련(IG메탈)이 지난해말 폴크스바겐사와 임금인하에 합의했다. 노련측은 고용인들이 대량 해고를 당하는 것보다는 임금인하에 동의,"공존"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유야 어쨋든 임금은 오를수는 있어도 내리기는 어렵다는 이른바 "임금하향 경직설"을 노조가 무너뜨렸다는 사실에 유럽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파업이란 말이 사라졌으며 내년도 임금인상폭도 3%선에서 이미 노사양측이 잠정 합의를 본 상태이다. 영국의 경우 70년대말 1천3백만명이 넘는 노조원들이 지난해는 7백만명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무게중심이 노조에서 사용자측으로 기울면서 기업이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수 있는 권한도 갖게 됐다. 삼성전자 영국 컬러TV공장이 지난달 근로자들과 협상, 별다른 잡음없이 내년부터 "근무시간의 계절차별제"를 실시키로 한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주문량이 하반기에 집중되는 현실을 감안, 상반기 근무시간을 하루 1시간씩줄이는 대신 연말 근무시간을 늘리자는 회사측 안에 근로자들이 순순히 동의한 결과였다. 폴크스바겐사도 삼성전자와 유사한 조건에 독일 노총에 제시, 마지막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 90년대 이후 지속된 경기침체로 인해 유럽노조의 중심세력은 강경에서온건쪽으로 선회, 기업환경이 한국보다 나아지는 분위기다. 오히려 "실업" 상태를 겪어본 근로자들은 손놀림은 한국근로자들보다 다소둔하나 이른바 3D 직종도 마다하지 않는 근면성을 되찾고 있다. 임금수준도 독일 프랑스등 일부국가를 제외하면 한국보다 높은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삼성전자 금성사등 국내 주요기업들이 진출러시를 이루고 있는 영국의 경우 북잉글랜드 공업단지의 임금수준은 시간당 평균 6달러로 삼성전자및 금성사의 한국 근로자와 비슷한 수준이다. 평균 국민소득이 우리의 2배정도인 사실을 감안하면 절반만 받고 일한다는계산이 나온다. 물론 회사가 점심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상여금이나 통근버스 같은 것도 없다. 창립기념이리나 연말에 조그만 선물을 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곳이다. 그 덕분에 노무 복리후생 관련 간접지원 부서를 가진 업체는 별로 없다. 그만큼 관리비가 절약되는 셈이다. 포르투갈도 사회보장부담을 포함 생산현장 근로자들의 평균 인건비가 시간당 4.8달러 정도이다. 프랑스도 시간당 임금이 평균 7달러 정도로 한국보다 다소 높지만 여타 지원이 없는 사실을 감안하면 임금이 비싸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다는게 대우전자 프랑스 컬러TV공장 민학기법인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임금상승률도 연 5%를 넘지 않는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분명 독일을 제외한 유럽은 임금이나 노조에 대한 부담이 한국보다 훨씬 작은게 사실이나 그렇다고 이같은 환경이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또 지역에 따라 노조에 잘못 접근,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도 많다. 대우중공업이 벨기에 활릉지역에 세운 중장비공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회사는 노사간 대립으로 금년 상반기는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하지 못했다. 일은 하지 않고 임금인상만을 요구하는 근로자들로 인해 곤욕을 치루다 찬바람이 나서야 별다른 소득없이 간신히 마무리지었다. 현지 정부가 주는 보조금을 의식, 지역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결과였다. 영국에 전자단지를 세우는 삼성도 지역노련이 노조설립을 허용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 이의 처리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노조설립을 허용하지 않아도 되나 노동당의 영향권인 이 지역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기업활동을 하기에는 여러가지 걸림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 보장비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회사가 임금의 절반수준을 퇴직연금 의료보험등 사회보장설비로 지급해야 하는 곳이다. 한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자랑할 정도로 완벽한 사회보장제도, 그리고 막강한 노조파워로 인해 기업환경이 가장 열악했던 유럽대륙, 이제 아시아 기업이 진출한 정도로 그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과거의 힘을 되찾으면 노조는 또다시 강경으로 흐를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장기적인 대책을 추진하기 않을 경우 낭패를 당할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