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가 후예 밝힌 소설 선봬..마지막 왕자 이구씨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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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가 후예들의 삶과 마지막왕자 이구(64)씨의 삶을 밝힌 역사소설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소설가 강용자씨의 "왕조의 후예"(삼신각간)가 화제의 책. 이책은 고종황제부터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있는 조선조 마지막왕자인 이구씨까지의 역정을통해 왕실의 몰락과정을 상세히 서술,역사속에 묻혀버린 우리나라왕실의 최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마지막황태자 영왕(영친왕)과 영왕의 아내인 일본여인 방자의 일생이 눈길을 끄는점. 영왕은 고조의 3남으로 이름은 이은이다. 11세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가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활했으며 일본 나시모토궁가의 맏딸인 방자여사와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존재로 평생을 지냈다. 조선의 마지막왕세자비인 방자(마사코공주)는 한때 일본황태자비 물망에 올랐던 인물.방자가 영왕과 결혼하게된 이유는 일본군벌들의 다툼때문이었다. 당시 일본 정치세력은 3편으로 나뉘어 방자를 비롯해서 도키코공주 나가코공주 등을 황태자비로 밀고 있었다. 일본군벌의 원로는 방자가 아기를 낳을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황태자비가 될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아기를 낳을수 없으므로 조선의 왕세자비가 되면 조선왕가의 후손이 자연스레 끊어지리라는 속셈이었던 것. 방자가 그후 아들을 낳자 불임을 주장했던 궁중의사 3명은 모두 처형당했다고 한다. 방자는 진과 구 두아들을 낳았는데 진은 어렸을때 급성 소화불량으로 죽고구는 현재 일본에 살고있다. 1920년에 결혼한 영왕과 방자부부는 일본에서 쭉 생활하다가 광복후 귀국하려 했지만 이승만박사의 반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1963년 박정희대통령의 호의로 귀국하지만 그때 영왕은 의식불명의 상태로 7년간 병원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쳤다. 방자여사는 한국에 온후 창덕궁 낙선재에 머물며 명휘원 자행회 등 정박아와 신체부자유자를 위한 사업에 헌신하다가 89년 사망했다. 아들 구와 한국에서 살기를 원했으나 구가 일본에서 점을 치는 아리다란 여자와 동거하며 한국에 오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이구씨는 17세때 홀로 미국에 가서 MIT공대를 졸업하고 미국여인인 줄리아와 결혼했다. 32세에 아내 줄리아와 귀국하나 전주이씨 종친회는 줄리아를 받아들이지않았고 이구씨는 생소한 한국생활에 힘들어했다. 게다가 79년 회장으로 있던 신한공항이 부도를 내자 일본으로돌아가 예언자를 자칭하는 아리다란 여성과 동거를 시작,지금까지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강용자씨는 "일본의 왜곡에 의해 무능하기만 했던 것으로 잘못 알려진 우리왕가에 대해 재평가하고 싶어 이들의 과거와 현재 생활을 소상하게 살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8일자).